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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May 02. 2020

세상이 날 싫어해도
이렇게 싫어할 수 있나

는 오해다. 세상은 늘 내 편이었다.

최근 내 삶은 빠른 속도로 쏟아져내리는 폭포 같았다. 이사를 했고, 며칠 뒤면 1년 좀 넘게 이어온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월급쟁이가 된다. 우연찮은 기회로 온라인 명상 코칭도 시작했다. 몇몇 인연과 자연스레 멀어지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면서 약간의 피로감도 느끼고 있다. 모두 내게 좋은 일이고 깊이 감사하고 있지만, 굵직한 변화가 한꺼번에 찾아오니 두렵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응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 팔자가 세다고 생각했던 과거에 세상은 늘 내 편이 아니었다. 아니, 내 편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날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는 일마다 초를 쳤고 만나는 사람마다 가슴에 칼을 꽂았다. 그러므로 얼마 전 일어난 사건에 대해 반드시 이야기해야겠다. ‘세상은 날 싫어해’라는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고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 일이다.





내가 늘 다니는 산책로에 야외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구석에서는 종종 고물상을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낡은 기계나 고철 따위를 부수는 작업을 하신다. 처음에는 왜 저기서 고물을 부수고 계실까 싶었지만 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 그냥 산책 풍경의 익숙한 등장인물일 뿐이었다.


그날도 나는 산책 중이었고 아주머니도 같은 자리에 계셨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문득 집에 버릴 노트북이 있는 것이 생각났다. 어차피 버릴 것이니 아주머니께 가져다 드리면 좋겠다 싶어서 말씀드렸더니 생각보다 너무 반가워하셨다. 별 것도 아닌데 좋아해 주시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주머니와 30분 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노트북이 없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며칠 전에 버렸단다. 왜 이럴 때만 행동이 빠른지… 몇 주간 분리수거함에 처박혀있던 노트북인데! 환하게 웃던 아주머니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노트북이 없다는 걸 알면 크게 실망하실지도 모른다. 기다리고 계실 테니 일단 아주머니께 가보기로 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주스와 물티슈도 챙겼다.


"어머니, 있잖아요… @#$%^$~ 이런 사정으로 노트북이 없어졌어요. 죄송해요…"


아주머니께 쭈뼛거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죄송하다며 손에 주스를 쥐어드리고 안색을 살폈는데 반응이 의외였다. 아주머니께서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고 계셨던 것이다. 내게 해주신 말씀은 더욱 의외였다.



우리 동네에 이런 착한 사람이 다 있네?



아주머니는 고물상을 차릴 형편이 되지 않아 주차장 구석에서 작업을 하시는데, 작업을 하다 보면 소음이 나기 마련이라 근처에 사는 주민과 트러블이 많다고 하셨다. 또 주차 공간이 필요한 운전자에게도 아주머니가 눈엣가시여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단다. 생계를 위해서는 고물을 팔아야 하는데 마땅히 일할 공간이 없으니 막막하고, 사람들에게 모진 말을 들으니 상처도 많이 받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 사소한 친절에 크게 감동하셨다고 했다.


"미안할 것 없어요. 나랑 한 약속을 지키려고 여기까지 다시 와주고, 미안하다고 음료수도 줬는데 얼마나 고마워요. 나는 노트북보다 이게 더 고맙고 좋아요. 아가씨 같은 사람이 있어서 살 맛이 나네요."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살 맛이 난다는 말.

살면서 누군가에게, 그것도 생판 모르는 남에게 그런 귀한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주머니와 금세 친해져서 번호도 주고받았는데 카톡 프로필명에 써두신 ‘기죽지 말고 당당하자’라는 문구를 보고 마음이 더 시큰거렸다. 계속 이야기하면 엉엉 울 것 같아서 어영부영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주차장을 벗어나자마자 눈물이 엄청 났다. 주변에 사람도 없고,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부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토끼눈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들이 놀랄 것 같았다. 일단 근처 카페에 가서 마음을 가라앉히기로 했다. 자주 가는 곳인데 주인 언니가 남에게 큰 관심도 없고 표정 변화도 없는 사람이라 내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날 보고 활짝 웃어주는 거다. 남자 친구라도 생긴 건가? 커피를 시키고 앉았는데 등 뒤에서 언니가 접시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워서요. 이거 드세요.



정성스럽게 구워낸 로터스 치즈케이크. 언니가 웃어준 것도 당황스러운데 케이크까지 주시니 더 당황스러웠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포장지만 빼놓고 말끔히 다 먹었다. 케이크를 오물거리며 방금까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되짚어봤다. 갑작스럽게 위로를 가득 받으니 어안이 벙벙해서 꿈을 꾸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는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로 용감하게 변화를 맞이했다. 또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가족과 지인의 극적인 도움으로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순조로운데 나는 습관처럼 불안해했다. 명상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지는 것 같으면 금세 또 불안해졌다. 마음에게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라고 아무리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불안은 이날의 사건들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로써 불안감의 원인이 ‘세상은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도 내 편이 아니고, 사람도 내 편이 아니니 모든 일을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이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끈다



아무래도 세상이 내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연달아 ‘나는 네 편이야!’라고 소리친 걸 보면 오해를 받는 게 많이 억울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세상은 늘 내 편이었다. 다만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내가 나를 어떤 방식으로 돕느냐에 따라 세상이 주는 도움도 달라지는 것 같다. 내가 나를 하찮게 대하면서 ‘나한테 행복은 어울리지 않아’라고 치부했을 때 세상은 나를 도와 열심히 인생을 망쳤다. 명상과 마음공부로 나 자신을 소중히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난 뒤 세상은 나를 아기 다루듯 한다. 작은 성과에도 칭찬해주고, 힘겨워할 땐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이다.


혹시 당신도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점검해봐야 할 것이 있다.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세상은 언제나 우리 편이었다. 그러므로 언제든, 당신이 원한다면 더 나은 방식으로 세상이 당신을 돕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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