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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Nov 17. 2019

거짓말에 대한 단상

중국집과 대왕 바퀴벌레

엄마가 중국집에서 일할 때였다. 엄마는 가끔 가게에 나와 동생을 데려갔다. 도로변에 있는 낡은 상가 건물 2층에 있는 가게였는데 옆으로 넓고 큰 창문이 인상적이었다. 사장 아저씨는 날씨가 좋을 땐 창문을 활짝 열어두곤 했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이었지만 난 제법 자연의 정취를 즐길 줄 아는 소녀였던 것 같다. 창문 앞에 까치발을 들고 서서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감상하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날씨가 매우 좋았다. 나른할 만큼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었는데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사장 아저씨는 신문을 읽었고, 주방장 아저씨는 턱을 괸 채 졸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와 동생,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만 적막 속을 떠다녔다.


적막이 우릴 완전히 삼킬 것 같을 때쯤 말끔히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한 시늉을 했다. 그는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다. 곧이어 연두색 바탕에 흰색 반점이 나있는 멜라민 접시에 짜장면이 실려왔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짜장면은 유난히 낯이 거무죽죽했다. 어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짜장면의 최후를 지켜봤다.


한편 나는 딴짓이 하고 싶어 몸이 배배 꼬였다. 괜히 달력을 쳐다보기도 하고 벽에 난 돌기의 수를 세며 따분함을 달랬다. 그러다 아주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한다. 벽에 엄청 큰 바퀴벌레가 붙어있었던 것이다. 몸집이 얼마나 큰지 내 손가락도 씹어먹을 것 같았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대왕 바퀴벌레다!’라고 소리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대신 말없이 손가락으로 바퀴벌레를 가리켰더니 엄마는 잽싸게 나를 팔 안에 가두고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사장 아저씨는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놀라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고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사장 아저씨가 읽던 신문은 바퀴벌레의 무덤이 되었다. 모든 일은 짜장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중년 신사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용하고 민첩하게 진행됐다.


이 사건은 내게 몇 안 남은 유년시절의 기억 중 하나다. 어제 뭘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이 사건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를 단순히 다 같이 합심해서 손님 몰래 바퀴벌레를 물리쳤다’는 내용으로 단정 지을 수도 있지만, 계속 곱씹다 보니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첫째,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내가 가담한 일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저희 업소엔 바퀴벌레 따윈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같은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있는 사실을 숨기는 것 역시 거짓말이다.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그 차이일 뿐이다. 또한 어떤 종류의 거짓말이든 흔적을 남긴다. 살다 보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상황을 개선해주는 ‘하얀 거짓말’도 있기에 모든 거짓말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거짓말이든 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안 하면 곤란해지니 여러모로 달갑지 않다. 늘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는 게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거짓말을 하느냐 마느냐가 문제였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떻게 하면 덜 나쁜 거짓말을 하느냐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둘째, 약자 앞에서 진실은 힘을 잃는다.

엄마는 늘 나에게 정직하고 성실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던 엄마가 사기극(?)에 동참한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중국집에서 나와 동생 다음으로 약자였다. 애가 둘이나 있는 가방끈 짧은 싱글맘이 일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 눈에는 하찮은 일이라도 엄마에겐 간절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날 ‘대왕 바퀴벌레다!’하고 소리치거나, 엄마가 손님에게 바퀴벌레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면 어떨까? 엄마는 폴더폰처럼 손님과 사장님께 굽신거리느라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 좀 과장하면 해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지 않은 대가가 남 앞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해고를 당하는 거라니 참 가혹하다.


때론 이렇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삶을 위협할 때가 있다. 위협을 감수할 능력이나 여건이 상대적으로 부실한 약자가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살면서 약자와 강자의 입장을 고루 경험하게 되지만 약자일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직장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삶이 참 고달프게 느껴진다.


그날의 사건을 생각하면 이젠 우습다는 생각보다는 씁쓸한 감정이 든다. 점점 현실에 찌들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더 암담한 것이 있다면 그날 때려잡은 바퀴벌레와 내가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적어도 바퀴벌레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래서 가을은 기다려지면서도 피곤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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