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일무이함은 무엇일까
시골에 사는 친구가 있다. 그는 생대추의 맛, 머루를 따야 하는 이유, 호두를 수확하는 법 같은 것을 안다. 분명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데 네가 아는 것과 내가 아는 것은 왜 이렇게 다른가. 그와 나의 세상은 매우 달라서 대화를 하다 보면 교집합을 찾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교집합을 찾는다고 해서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우리에게는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고유성이 존재한다.
육체는 집과 같다. 빈집이라도 그곳에 살던 사람의 습관과 체취가 남아있는 것처럼 육체도 내가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주름과 흉터 같은 흔적이 남는다. 우리는 보통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구별하지만, 사실 개인을 정말로 구별 짓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모든 말과 행동을 관장하는 것은 정신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공동체에 속해 있다 보면 서로 다른 사람일지라도 정신세계의 일부분을 공유하게 된다.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애국심이나 공동체 의식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라는 집합에만 속하며 다른 집합에는 속하지 않는 고유한 생각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무엇이 된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 존재는 유일무이하다’는 감정이 삶에 대한 긍정성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없는 것이 내게 있다는 사실은 삶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류든 가전기기든 한정판이 더욱 귀한 대접을 받는 것과 같다.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오롯이 내 생각을 갖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최신 문물에 남들보다 좀 둔한 편이어서 최근에야 유튜브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3개월 정도 되자 유튜브를 삭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하는 콘텐츠들을 보고 들으니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거리는 많아졌지만 전부 주워들은 얘기들 뿐이다. 자기 생각이 아닌 것들로 대화가 채워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상대방이 유튜버 대타로 나와서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유일무이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나는 30대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어린아이 같은 면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또 칼보다 펜을, 냉철함보다 다정함을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추한 것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나 빨래처럼 몸을 움직여 내 것을 정돈하는 일이 매우 가치 있다고 여긴다. 늘어놓고 보니 딱히 기발 하달 것이 없다. 하지만 나의 유일무이함을 결정하는 것이 반드시 특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스스로 그것이 유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