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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Nov 17. 2019

똥물에 빠져도 우린 웃을 수 있다

할머니에게서 배운 '언제든 웃는 방법;

‘술 잘 마시게 생겼다’는 말을 꽤 듣는다. 실망스럽게도 나는 술이 한 잔만 들어가도 얼굴이 빨개진다. 도대체 술 잘 마시게 생긴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털털하고 혈기왕성하게 보인다는 뜻이겠거니 하고 넘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실 난 엄청 소심하다. 작은 것에 쉽게 상처 받고 연연한다. 쉽게 상처 받는 사람들은 비판과 충고에 약하다. 비판과 충고는 비난과는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한테 싫은 소리를 들으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풀이 죽을 때가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게 모든 일을 우습게 만들려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내 유전자(?)에 장난기가 다분한 것인지 부정적인 상황이 몰아치면 희화화함으로써 웃을 일을 만든다. 내 생애 가장 궁핍한 때였던 고등학생 시절, 엄마에게 문제집을 사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누군가 버린 걸 주워다 공부했다. 웃긴 건 맨 처음에나 내 처지가 슬펐지 익숙해지고 나니 보물찾기 하는 느낌도 들었다는 것이다. 간혹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는 노다지를 캐는 날이면 뿌듯하기도 하고, 대단한 음모를 계획한 은행털이범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는 나 자신이 웃겨서 혼자 낄낄댔다.


내 개그감은 할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다. 나는 9살이 되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 뒤쪽에는 포장되지 않은 넓은 땅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이좋게 땅을 나눠 밭을 가꿨다. 내 기억으로 할머니는 그곳에 고구마나 상추 같은 걸 심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종종 나를 그곳에 데려갔는데, 밭으로 가려면 장돌로 징검다리를 엉성하게 놓은 실개천을 건너야 했다. 할머니는 그 개천을 똥물이라고 불렀는데 진짜 똥물처럼 더러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똥물이라고 하니 늘 그곳을 건널 때면 발이 헛디디지는 않을까 긴장하게 됐다.


어느 날은 개천을 건너는데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아주다가 그만 똥물에 발이 빠지고 말았다. 나 때문에 똥물에 발을 담그게 되다니! 할머니가 화를 내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냥 ‘아이고, 이걸 어째!’ 하면서 깔깔 웃어버렸다. 할머니가 웃으니 나도 웃음이 났다. 그 일로 마냥 나쁘기만 한 상황은 없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슬픈 일이 생겨도 웃을 거리는 분명 있다. 살다 보면 똥물이 아니라 똥통에 빠진 것 같이 암담한 상황이 온다. 당연히 세상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웃음을 선택할 수 있다. 한번 웃고 나면 그다음은 더 쉽다. 지금 나를 둘러싼 상황 때문에 괴롭다면 웃음거리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 한결 마음이 나아질 거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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