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내가 외로운 나를 구한다
나는 17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 이젠 나름대로 요령이 생겨서 우울에 적절히 대처할 줄도 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가장 컸다. 감정을 조절하는 스위치가 있다면 내 것은 손쓸 수 없이 망가진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우울증 때문에 약물 치료를 시작했을 때 ‘다 네 마음먹기에 달렸다. 너만 마음을 잘 잡으면 되는데 왜 병원씩이나 다녀?’라고 했다. 난 그 ‘마음 잡기’나 ‘마음먹기’란 말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잡히고, 먹히는 쪽은 마음이 아니라 늘 나였으니까. 난 항상 숨어 다니기 바빴다. 술래잡기를 할 때 보통 술래는 별 재미가 없다. 그런데 나와 마음의 술래잡기에서 나는 늘 술래이고 싶었다. 쫓기는 건 그게 놀이일 때만 즐거운 법이다.
우울증 때문에 생긴 좋은 습관은 내 감정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떨 때 우울감을 느끼는지, 어떻게 하면 우울감을 완화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외로움과 우울 사이에 큰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외로움은 우울증을 만들고, 우울증은 다시 외로움을 증폭시킨다. 실로 완벽한 악순환이다.
내가 가진 외로움은 단순히 매일이 무료하다거나,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은 아닌 것 같다. 유년기에 고착된 뿌리 깊은 외로움, 이를테면 결핍으로서의 외로움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고 엄마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집을 자주 비웠다. 사교성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부모와의 분리에서 생겨난 결핍은 외톨이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욱 깊어졌고, 결국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으로 고착됐다. 내가 결론 지은 외로움과 우울증의 상관관계가 사실이라면, 외로움을 느낄 때 바로 감정을 다스려야 우울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감정을 조절하는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아 몇 년을 씨름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건 오래 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면 고독,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이라고 하기에 그런 줄만 알고 여러 번의 실수와 오류를 범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숲을 산책하다가 깨닫게 된 고독과 외로움이란 이런 것이다. 외로움은 빠르게 타올랐다가 꺼지는 감정이다. ‘나만’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거나 즐거운 장소에 가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이유는 정신을 갉아먹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기적으로 외로움을 느낀 사람은 외로움에 잠식되어 삶에 ‘나’는 없고 외로움만 남는다.
반대로 고독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은 내가 세계의 단 하나의 존재라는 것, 또한 외롭지 않아 보이는 타인 역시 단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의 모든 부분으로 수용한다. 체념이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은근한 온도로 오래 남는다. 고독은 타인과 내가 분리되어 있는 동시에 연결되어 있으며, 타인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지라도 세계는 나와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독은 (물리적으로) 홀로 살아갈 힘을 준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쫓기던 삶을 청산하고 ‘마음 잡기’를 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외롭지 않은 사람일 수 있을까? 막상 고독이란 감정을 알게 되자 두려움이 앞섰다.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만이 홀로 있는 시간을 좋아할 수 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서 내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자꾸 ‘마음’만 떠올랐다. 어쩌면 마음이 나를 끈질기게 잡았던 건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나밖에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달래줄 것도, 고독으로 외로움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에 잠겨 우는 이를 위로한 적은 있어도 기진맥진한 내 마음을 토닥여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위로를 건넨 사람들이 떠날 때 내 마음만은 그 자리에 있었다. 늘 고아였던 마음을 이젠 잡아주어야 한다. 나에게서 나를 구할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