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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Nov 17. 2019

사랑에 선택받은 자

나는 또다시 선택받고, 아파할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학교가 멀다 보니 동네에 친구가 없어서 늘 외톨이였다. 집을 나가면 아는 사람이라곤 전부 어른들 뿐이어서 무료함에 좀이 쑤실 때면 놀이터에 가서 혼자 그네를 탔다.


그러다 나를 상대해주는 친구 한 명이 생겼다. 같은 층에 살던 동갑내기 남자애였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기도 했고, 그 녀석이 내가 좋다며 계속 추근댔기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우린 쿨한 관계였다. 어쩌다 마주치는 일이 생기면 같이 놀았다. 헤어질 때면 다음에 만날 약속 따위는 정하지 않았다. 언제든 같이 놀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어쩌면 내 생애 가장 쿨하면서도 믿음직한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그 녀석이 내가 목젖이 보이도록 웃을 때까지 뺑뺑이(회전무대)를 돌려주더니 대뜸 ‘나랑 결혼할래?’라고 물었다. 마음을 흡족하게 한 뒤 제안을 하다니. 뭘 좀 아는 놈이다. 나는 뜬금없는 프러포즈에 사색이 되어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 뒤로 녀석은 내가 오케이 한 것도 아닌데 동네방네 결혼 날짜가 잡힌 것 마냥 떠들고 다녔다. 심지어 우리 집에 와서 할머니랑 엄마한테까지 ‘저 얘랑 결혼할 거예요’라고 했다. 좋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첫인상은 이렇게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것으로 남아있다.


이제야 고백하는 거지만 사실 나도 그 애가 좋았다. 이건 어른이 말하는 사랑과는 다른 감정이다. 티클 하나 없이 투명한 무언가였다. 그래서 늘 그 애와 가까워지고 싶었는데, 동시에 그 애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이때 내가 느꼈던 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었던 것 같다. 벌거벗은 채 민낯으로 뛰어다니는 사랑.


최초의 사랑은 알몸이다. 우리는 벌거벗은 사랑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게 되면서 사랑에 옷을 지어 입힌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기 전 벌거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내 사랑이 알몸인 게 부끄럽지 않을 때가 있었다. 아마 누군가로 인해 울게 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사랑에 옷을 입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바다 거품에서 탄생할 때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여기엔 포장되지 않은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는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거나 이미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랑은 동화, 혹은 사치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 씨 같은 순수한 사랑꾼이 실존한다고 믿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우리는 왜 상처 받을 것을 알면서도 매번 사랑에 빠지는가? 우리는 사랑 앞에서 무력함을 느낀다. 나는 수차례 연애를 거치고 나서야 내가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를 사랑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순 없었지만 무엇이 사랑인지는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누군가 나에게 잔뜩 치장한 사랑을 건넬 때 그 이면에 있는 상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가 사랑에 옷을 지어 입히며 느꼈을 쓸쓸함과 자괴감을 떠올리다 보면 결국 우리가 사랑 앞에 한없이 약한 인간에 불과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래 놓고 또 장난감 뺏긴 애처럼 울면서 이 페이지를 찢어버릴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다만 글은 찢더라도 마음에 작은 숨구멍은 열어두고 싶다. 사랑은 또다시 날 선택할 것이고, 나는 또다시 상처 받게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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