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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Mar 20. 2019

엄마, 이젠 나 좀 사랑해줘.

  낮에 엄마와 사소한 일로 투닥거렸다. 입이 댓 발 나온 채로 복수를 꿈꾸다 결국은 글이나 쓰고 앉았다. 그래서 오늘은 아쉬운 소리를 좀 해 볼 참이다.



  엄마는 손이 맵다. 그래서인지 사랑하는 마음도 거친 방식으로 표현한다. 귀여운 아이를 보면 짓궂은 장난을 치려 하고, 반려견 콩이도 손에 힘을 가득 실어 쓰다듬거나 껴안아서 나무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는 사랑에 인색한 사람이다. 나에겐 엄마가 빈틈없이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다정하게 칭찬해준 기억이 전혀 없다. 내가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와도 엄마는 ‘더 열심히 하라’고 했다. 오기와 서운함으로 가득 차서 매번 더 잘 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10대를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 내신 성적이 눈에 띄게 상승한 적이 있었다. 살면서 두 번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수 없을 거라고 느낄 만큼 열심히 한 결과였다. 이번엔 엄마가 웃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가자마자 자랑스럽게 내민 성적표를 훑어본 엄마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이번엔 괜찮게 나왔네. 그래도 넌 아직 멀었다.’

  그때 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엄마를 절대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고삐 풀린 채로 자유로이 지냈다. 10대의 삶에 대한 반작용으로 간섭을 받는 걸 치를 떨며 싫어했다. 그 누구의 기대도 충족시키려 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다. 치열하게 살던 버릇은 관성처럼 남아서 일이든 연애든 최선을 다했다. 무엇이든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한다는 건 큰 장점이지만, 돌이켜보면 내게 독이 된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참 용감하면서도 어리석은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난 일과 사람으로 마음의 구멍을 메우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늘 어울리지 않는 실로 얼기설기 깁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나는 구멍이 더 커지지 않도록 늘 마음을 움츠리고 다녔다. ‘그렇게 해야 무사하게 운반할 수 있는 무엇이 된 것처럼.’(한강, <소년이온다>) 몇몇 결핍은 제 시기에 채워지지 않으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 엄마의 속사정을 알게 됐다. 엄마는 지난날 나에게 사랑을 표현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매우 후회한다고 했다. 다만 홀로 나를 키우려다보니 혹시 내가 비뚤어질까 싶어 엄하게 대했다고 항변했다.(나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사랑은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하지만, 학습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대로 행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건강하게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배운 적 없는 엄마로선 별 도리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출근을, 나는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함께 걸어간 지하철 역에서 엄마가 탈 열차를 기다려주었다. 나는 왠지 엄마를 껴안아주고 싶어서 엄마 목에 팔을 감고 ‘엄마는 늙어서도 나 때문에 쉬질 못하네’ 했다. 엄마는 그저 웃었다. 엄마 냄새를 맡고 있자니 마음이 난로 앞에 앉은 듯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난 아직도 엄마 사랑이 받고 싶은가 보다. 스물 일곱의 얼굴을 하고 열 일곱 살처럼 투정을 부린다. 엄마, 그러니까 이젠 나 좀 사랑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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