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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Nov 17. 2019

아빠가 죽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5살이 되던 해에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화장 기계의 두꺼운 철문이 닫히던 장면이다. 엄마는 통곡했고, 동생은 엄마를 따라 울었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슬프지 않아서 울지 않았던 건 아닌 것 같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아버지는 하얗고 따끈한 항아리에 담겼다. 나보다 키도 크고 몸집도 컸던 아버지는 두 손에 들어오는 항아리만큼 작아져있었다. 그것도 감자전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한 가루가 된 채. 화장한 유골을 산에 뿌리는 것으로 아버지의 연대기는 마무리됐다.


우울증은 내게 한계를 넘어선 슬픔이 모든 감정을 마비시킨다는 걸 알려줬다. 보통 우울증이 심해질수록 부정적인 감정이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가 없다. 치과에서 잇몸에 마취를 했을 때와 비슷하다. 분명 내 마음은 제자리에 있는데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슬픔이나 기쁨 같은 모든 감정에 둔해진다. 아버지가 죽던 날 내가 울지 않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부모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어린 인생일 수록 더욱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것을 감당해야 할 슬픔의 범위에 끼워넣는 것 자체가 비통하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아버지의 부재가 내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생전에도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추억할 거리도 별로 없었다. 다만 친구들이 아버지에 대해 물어볼 때는 좀 난감했다. 매번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커지고 나서는 누군가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천연덕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솔직히 말해봤자 나도 상대방도 얼굴 붉힐 일만 생겼으니까.


이젠 그게 흠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굳이 숨기지 않는다. 가끔은 아버지에 대해 묻는 꼰대에게 ‘무덤에 계시는데요’ 라고 받아쳐 당황스럽게 만드는 걸 즐길 때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게 쉬워질수록 상실감은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외식을 마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집으로 향하는 가족의 모습을 볼 때, 부성애를 담은 이야기가 TV에서 전해질 때 더욱 그렇다. 아버지가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하게 된다.


내가 이제야 아버지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것은 상실감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돌보지 않은 상처는 언젠가 다시 나를 아프게 한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아문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상처는 시간이 치유해주지 않는다. 제대로 치유하지 않은 상처는 아물지 않은 상태로 마음 깊숙한 곳에 가라앉는다. 그러다가 자극이 오면 다시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다. 상처가 나를 두 번 죽이지 않으려면 아프더라도 다시 들춰내야 한다. 상처를 곱씹는 과정을 통해 나와 상대방을 용서해야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되짚는 과정에서 나의 특정한 행동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면 연애 습관이 있다. 연애를 할 때 상대에게 의지하려는 욕구가 강한 편인데, 이런 성향이 매번 관계를 망쳤다. 늘 후회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이 내 결핍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했던 사랑을 애인으로부터 채우려 했다. 상대와 연애를 한 게 아니라 아버지와 연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의 존재 자체가 아버지의 흔적이었다. 왼쪽 갈비뼈 언저리에 있는 하얀 반점과 아버지의 것을 닮은 발가락, 씹어 삼키는 것보다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하는 식습관 같은 것들은 아버지가 물려준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와 똑 닮은 동생을 마주하는 것이 버겁고, 하얀 반점과 발가락도 어쩐지 미운 걸 보면 상처를 들춰내는 게 힘들긴 한 모양이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귀여워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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