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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Sep 11. 2020

나의 노래

벽지처럼, 좋은 순간 언제나 배경으로 있었던 그런 것들

지난 3월부터 노래를 배우러 다녔다. 이제 9월이니 6개월 차.


나는 원래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지난해 어느 예능 프로를 보고 뮤지컬에 눈이 갔다. 그래서 시작했다.

무대를 보고 울고 웃으며 행복해하는 출연자들을 보며 아, 노래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거의 모든 무대를 10번 넘게 돌려봤다.


난 노래를 배워본 적도, 노래에 대한 꿈을 꾼 적도 없다. 듣는 건 좋아했지만, 사실 그것은 귀가 심심하니 일단 귀에 꽂고 보는 하나의 행위였던 것이다.

아빠는 음악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내가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고 어릴 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난 매일 가는 피아노 학원에서 선생님 눈을 피해 사과 10개를 억지로 칠하느라 진땀을 뺐다.


노래방에 가도 분위기를 띄우고 싶었던 나는, 되지도 않는 혀로 랩을 했고 되지도 않는 몸으로 춤을 췄다.

그게 가장 즐거웠고, 노래로 촉촉한 분위기를 만드는 재능은 없는 게 확실했기 때문에.

중학교 합창대회에서는 심지어 지휘자였다. 진짜 노래를 한 적이 없네.


무작정 뮤지컬 발성반에 들어갔지만 난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입만 털 줄 알지 입으로 고운 소리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가사를 이해하고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뱉는다는 것은, 연기와 비슷했다.

다른 점은, 연기는 열심히 하면 늘었다. 하지만 노래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목과 배 어쩌면 눈알까지 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를 연습하며 새로운 감정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슬픈 노래를 연습하며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노래를 못해서 어쩌지?'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그럴 때 노래는 잘 부르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머리에 눌러 담았다.

즐거우면 됐지, 좋으면 됐지.


김이나 작사가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누군가 김이나에게 '노래란 무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은 것을 봤다. 김이나 작사가는 노래란, '벽지처럼 어떠한 순간의 배경으로써 묵묵히 빛을 내고 있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돌아보면 내 인생의 순간순간들에는 노래가 있었다. 그것이 드라마 OST가 되었든,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가 되었든, 엑소의 '으르렁'이 되었든,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되었든 그것들은 나의 순간순간에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다.


10월에 공연을 올리면, 목적성을 잃은 나의 '노래'라는 것이 삶에서 빛을 잃어 희미해질 수 있다.

희미한 이 벽지 같은 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빛으로 희미하게나마 항상 곁에 있을 것이다. 발견하기만 한다면


기타를 배우고 싶어 졌다. 바닷가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다.

마치 바닷바람이 되는 것처럼 기타를 타고 날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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