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름모 Feb 07. 2021

스물둘을 마무리하며( 2 )

2020년 11월 27일에 작성한 글

22년의 회고록

19살 11월, 중견기업 전산실에 처음 입사했다. 첫 입사한 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인상깊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1년 6개월동안 개발을 했다. 이것,저것 지금 돌아보면 다 쓸데없지는 않지만 돈을 벌기에는 나쁘지 않았던 작업들을 했던 것 같다. 뿌듯함은 없고- 그 때의 나는 정말 여리고 어렸고 뭣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짜증이 나는데 왜 짜증이 나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연극을 시작했고, 연극이 끝난 직후에 나의 안에 쌓여가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서 그만뒀다. 조용하고 답답하고 건조한 전산실 사무실에 있으면 머리가 터져서 죽을 것 같았다. 살기 위해서 그만뒀다.


21살 3월,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개발이 싫고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듯 선택했던 '교육자'라는 직무였다. 교육이 좋고, 강의가 좋았다. 하지만 커리큘럼을 짠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보편적으로 고졸과 교육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막내로 들어와서 한다는 게 서류 작업도, 단순 숫자 나열도, QA도 아니고 교육 회사의 핵심인 커리큘럼을 짜는 업무였다는 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참 신기하다. 사수님은 나를 왜 뽑았을까? 그냥 내 말빨에 속아 넘어간 게 틀림없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 교육도 결국에는 포장이라는 것? 하지만 그 내용물이 알차지 않다면 내 학생은 절대 100퍼센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처음 입사하고 1년 동안은 그러한 교육의 문화와 테두리를 배웠다. 아, 그리고 스타트업의 생태계와 프로세스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 동아리같은 사내 문화와 정치를 겪었다. 신기했다. 이렇게 나이 먹은 어른들도 애들처럼 행동하는 게 웃겼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욕은 안 먹었다. 난 당당하고 행복한데, 모두에게 난 아픈 손가락이었나보다.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가 고졸이라 대졸을 뽑아야 한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마음이 이상했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 위해 계속 웃었다. 그리고 두 배로 열심히 했다. 재밌었다. 21살 10월부터 온라인 서비스 교육 담당자로 투입되었다. 계속 밤을 샜다. 출시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정확하게는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22살의 3월이 반 쯤 지났을 때, 피땀눈물이 묻은 서비스가 출시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팀원이 들어왔다. 나는 팀장이 되었고, 실무보다는 관리 업무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었다. 친구는 가끔 우리 회사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리 회사는 나같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9월에는 다른 팀원 한분이 입사하셨다. 우리 팀은 3명이 되었고, 나는 그들보다 훨씬 연봉이 적고 나이도 어리고 학력도 없는 팀장이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열등감 느끼지 않는 척, 당당한 척하며 콘텐츠를 만들었다. 22살 11월 중순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확하게는 이 회사 안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기대가 되지 않고, 열정도 생기지 않는다. 애정도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 다니는 회사라고 말하기에는 연봉도 적다. 나는 왜 이 곳에 매몰되고 있는가? 시간이 흐르니까, 그리고 회사에서 계속 구르고 있으니까 무언가를 계속 배우기는 하겠지. 하지만 다른 곳에 간다면 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기가 익숙하고 편하니까 안주하고 있는 것 같다. 매일 하는 일을 하며, 불안과 함께 일을 하고, 매일 받는 돈에 만족하며 일 한다. 겁이 난다. 바뀌기 귀찮으니까, 두려우니까 원래 하던 일을 벗어나는 게 힘든거다. 세상에 얼마나 재밌는 게 많은지 알면서. 입으로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막상 행동은 안하는거지. 귀찮으니까. 그리고 오래 다녀야 할 것 같으니까. 오래 다녀야 할 것 같아서 오래 다니는 건 얼마나 세상이 짜놓은 테두리 안에 내 발로 기어들어가는 일인가? 10년 후 눈을 떴을 때 내가 테두리 안에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은 내가 스스로 인지할 수 있다. 나의 삶과 젊음을 투자하여 일하는 곳이 재미가 없다면 나는 더 이상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두 가지 있다. 길과 걸을 수 있는 발. 길은 있겠지. 어디든 어떻든 길은 있다. 나는 내 발이 잘 믿기지가 않는다. 발이 있기는 한데, 예전에 걸음을 내딛다가 돌부리를 만났던 경험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게 그렇게 무섭다. 그리고 피곤하다. 이 지긋지긋한 눈가리개는 언제쯤 사라지는지 궁금하다. 귀찮아서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거다. 그냥 그렇게 지금도 있다.


Agenda 1 - 교육?

처음에 교육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나서기 좋아하고 에너지 넘쳤던 20살의 내가 있다. 앉아서 주구장창 모니터만 바라보며 개발을 하는 건 자존감이 낮아지는 일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여태 해 왔던 프로그래밍을 버릴 수는 없으니, 액티브하게 프로그래밍을 쓸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교육을 발견했다. 나는 떠들고 싶었고 토론하고 싶었다. 교육을 하면 개발을 하긴 하는데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이거다, 싶었던거지,

그렇다면 지금은 교육을 하고싶은가? - 하고 싶다. 하고야 싶다. 하지만 지금 교육 시장은 재미없다. 내가 원하는 교육을 하고 싶다. 학생들에게 '진짜'로 도움이 되는 교육.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평등을 위한 교육. 언젠가 내 그릇이 정말 바다만큼 커져서 학교를 세우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Agenda 2 - 그럼 뭐?

그래서 난 뭘 하고 싶은가? - 그냥 쉬고 싶다. 사실 그냥 쉬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쉬면 대학교 입시에 불똥이 튀기 때문에.. 가장 덜 피곤한 선택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싶다. 12월 27일에 빨리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사실 지금 4대 보험이 되는 알바를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냥 그렇게 해도 된다. 이직이 아닌 재취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재취업이 안 될 걸 걱정해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내 삶이 너무 멋없어서 그냥 그만 둬 버리고 싶다.


Agenda 3 - 사람?

나는 어떤 사람인가? - 다양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정말 특별하고 예쁜 사람. 나는 내가 참 좋다. 끓는 점이 낮고 투명한 사람. 재밌는 것도 많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다. 힘든 거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에너지를 꾸준히 방출할 때 가장 건강한 생각을 하는 사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 피곤한 거 즐기는 사람. 야식 먹으면 다음 날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 내 맘대로 하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 근데 그렇게 할 용기는 크게 없는 사람. 내 이름이 잘 어울리는 사람. 혼자 서려고 계속 노력하는 사람. 거짓말 못하는 사람. 미워할 구석이 딱히 없는 사람. 아직 거절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일을 대하는 너는 어떤 사람이야? - 일을 좋아하는 사람. 원동력이 있을 때 2배 이상의 효율이 나는 사람.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 충전이 필요한 사람. 미래가 불안한 사람.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합리화 하는 사람.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이를 먹는 건 어때? - 나이를 먹는다는 건 끓는 점이 올라가는 것 같다. 더 이상 같은 온도에서는 설레지 않고 기쁘지 않다. 대신에 다른 종류의 물질이나 더 높은 온도에서 끓는 거다. 끓는 점이 낮았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더 단단해지고 쉽지 않아지는.

작가의 이전글 스물둘을 마무리하며( 1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