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름모 Jul 09. 2019

귀납적 스물하나

난 맑게 살 거야

 제목은 그럴 듯 하지만 사실 귀납이고 연역이고 잘 모른다. 

난 고등학생일 때 주야장천 프로그래밍만 했고, 수행평가를 잘 봐야 했고, 취업을 해야 했으니. 그리고 결국 목표를 달성해 사원증을 목에 건 19살의 난, 매일 아침 담배 냄새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거지 같았다. 엘리베이터도 거지 같고 출입문도 거지 같고.. 특히 책상 유리 아래 들어있는 초록색 부직포가 제일 거지 같았다. 아, pc도 거지 같았다. ssd도 달려있지 않아 아침에 출근하면 로딩만 몇 분을 했다. 


학교를 총 9년 다녔지만 배운 거라곤 살아남는 방법뿐이다. 사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아니고 살아남는 방법. 유명한 생존자로 성장하면 모교에서 강연을 할 수도 있었다.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은 고졸' 등의 타이틀을 달고 말이다. 살아남은 사람의 강연이라니. 우습지만 나도 결국 생존자 중 한 명이다. 정말 멋없다.


인생의 그래프를 그릴 때 짙게 표시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 작년에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날 괴롭혔던 이 질문은 날 잠 못 들게 했고,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서게끔 했다. 결국 내린 결론은 '스무 살에 결정해야 할 건 아니다.'라는 것.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나에게 있어서 세이브 포인트였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다 힘들 때, 지쳤을 때,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잠들지 못할 때는 저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간다. '왜'는 찾지 못했지만 '어떻게'를 찾았다. '왜'라는 질문에 당장 대답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어떤 책에서 '단풍 보는 법'을 읽은 적이 있다. 가을이 되면 단풍은 혼신의 힘을 다해 붉어지고, 더 붉어질 수 없을 때 아래로 떨어진다. 아래로 추락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을 생각하면 단풍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그런 글이었다. 그 책을 읽은 뒤부터 출근할 때 보이는 단풍들의 색이 하루하루 달라 보였다. 나중에 떨어질 걸 알면서도 혼신을 다해 붉어지는 단풍이 눈부셨다. 아무것도 다를 것 없는 출근길이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어렵지 않게 반복되었다. 

왜 사느냐니? 하루하루 붉어지는 거지 뭐.


난 맑게 살고 싶다. 모든 사람과 사물, 자연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싶다. 마치 처음 본 것처럼 그 상황에 집중하고 꾸밈도 거짓도 없는 채로 살고 싶다. 당연한 것이 없게끔 하고 싶다. 당연한 것은 없기에 난 내가 지금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들에 감사하고 싶다. 더불어 이런 것들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2019년 올해의 목표는 귀납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대전제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선입견 없이 개별적인 사실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의 스물한 살이 개별적인 것들의 집합으로 반짝거리면 좋겠다. 작은 것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기고 산다면 언젠가 내 삶의 이유도 반짝이며 존재를 알리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