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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Jul 09. 2019

첫 회사, 고졸, 계약직

 19.9살부터 회사 생활을 했다. 그땐 미성년자라 연장근무가 불법이었다. 이제 성인이라 별 수 없지만.

내 첫 회사는 유통을 주로 하는 중견업체였다. 원래 회사 사옥이 집에서 20분 떨어진 대로변에 있었는데 집에서 5분 거리로 이전을 했다. 그래서 출근하기 싫은 아침은 허공에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우리 회사는 근무복이 있었다. 노란 바탕에 빨간 로고가 박혀있는... 기능성 떨어지는 바람막이 재질.

난 그 근무복의 오른쪽 가슴에 '___ 사원'이라는 명찰을 달고 일했다. 명찰은 헐거운 옷핀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아무리 험하게 굴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이 회사에 달랑거리며 붙어있는 나처럼.


난 고졸에 계약직이었다. 최악이다. 거지 같은 조건들은 다 갖다 붙여 놓은 것 같다. 고졸에 계약직이라니. 부장님은 면접장에서 1년 후에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여하튼 난 지금 구조조정 1순위였고, 회사는 고맙게도 내 동기들과 내가 매일매일 이 사실을 상기할 수 있게끔 행동했다.


회사 사옥은 출입증 겸 사원증을 태깅해야만 출입할 수 있었다. 구사옥은 그런 거 없었는데,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출입구 태깅 시스템이 생겼다. 아, 계약직 사원증은 종이였다. 종이는 태깅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지문인식 시스템도 함께 있어 이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작동이 매끄럽지 못해 인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출입증을 태깅하면 문이 빠르게 열린다. 반면에 지문은 상태가 영 별로일 때 인식 시간이 5초 이상 걸리곤 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출퇴근을 한다. 나는 혹여나 손에 땀이 났을까 겉옷에 손을 슥슥 문지르는 게 습관이 됐다.


내 동기는 배워본 적 없는 iOS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다. 테스트 디바이스가 없어 내 휴대폰을 사용했다. 내가 아이폰으로 바꾸기 전엔 다른 팀 주임님의 아이폰을 사용했다. 내 동기는 아무 말하지 않고 개발을 했다. 나도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빌려줬다. 부끄러운 알림이 뜨면 어떡하지, 별의별 상상을 하다 보면 퇴근시간이 왔다.


스무 살이었던 나와 동기는 종종 맥주를 마시며 정규직 이야기를 했다. 교육기간에 동기들이랑 이런저런 활동하면 재밌겠다. 연봉도 오르겠지? 그렇겠지. 이제 월례모임도 갈 수 있고, 사원증도 카드로 나오니 지문으로 진땀 빼지 않아도 돼.


1년 계약이 만료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계약직이었다.

종이 사원증을 가진 우리는 월급이 십오만 원 올랐다.


그리고 3개월 뒤, 나는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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