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름모 Feb 04. 2022

사랑하는 것을 떠나는 방법

20년 2월의 글

퇴사를 결정했다. 아니 통보했다.  

마음이 이상하다. 나의 스물 하나, 스물둘, 그리고 스물셋을 함께 한 나의 두 번째 회사.

어느새 둥지 같아버린 보금자리를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기에 후회는 없다. 정말 내 것처럼 키워온 나의 교육, 나의 서비스, 나의 프로그램, 나의 학생. 그리고 나.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를 사랑해 준 많은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걷는 길에서 이루어낸 값진 성과, 성장들.

이제는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었던 곳이 되어버린 나의 세렝게티.


후련하기도 슬프기도 아쉽기도. 벌써 그립기도 걱정되고도 하고 참 기분이 오묘하다.

한빈님 없으면 어쩌냐며 다들 얘기하지만, 나도 이곳을 떠나 어떻게 하냐며 징징대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아물고 익숙해진다는 걸 알잖아. 그러니 괜찮다.


무언가를 떠난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아무렇지 않아 매번 참 새롭다. 너무 새롭다.

다만, 스스로 결정하여 내 두발로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은 정말 큰 성장통을 수반하는 커다란 덩어리 같다.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겠지. 남은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사랑하자. 충분히 일하자. 다시는 그럴 수 없을 것처럼 몰입하고 헌신하자.

사랑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


연애를 하면, 단순히 곁에 한 사람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의 세계가 온다고, 그 사람의 삶이 나에게 오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 공동체의 세계가 나에게 온다. 스며든다.


자연스럽게 타던 141번 버스와 밤이 되면 알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하던 성수 대교. 버스가 바로 오는 마법이 걸린 도산공원 정류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던 삼성중앙역 플랫폼과 역에서 마주치면 함께 출근하던 나의 동료들. 춥다며 가까이 옮기던 라디에이터와 그러다 옷 타!- 걱정해주던 나의 사람들. 어느 순간 사라져 있는 내 책상의 군것질거리들과 모르는 척하던 너희의 눈동자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삼성동의 가파른 계단 그리고 라피키.

괴짜 같다며 질색하던 공간들의 이름도 이제는 나에게 한낱 명사가 된다.


이렇게 이별이 힘든 것을 실감할 때면 차라리 아무것도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별이 무서워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겁쟁이일까 아니면 정당한 자기 방어일까?

사람도 그렇다. 너무 사랑해버릴까 무섭다. 너무 흠뻑 빠져 젖어버려서 영원히 나에게 묻어버리는 게.

나는 언제쯤 단단해질까. 단단해지고 싶기는 한 걸까.

말랑한 내가 참 좋지만 가끔은 이 세상이 나를 속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너도 이 상황도 모두 가짜인 거야. 모두 연극인 거야. 

작가의 이전글 잘 가, 스물셋(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