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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Feb 01. 2022

잘 가, 스물셋(1)

돌아오지 않을 셋을 보내며

스물둘에서 스물셋으로 넘어가던 그즈음- 올 한 해는 별 탈 없이 조그맣고 둥근 하루하루를 살아내겠지, 생각했다. 아주 잠깐 스쳤던 생각인데. 별 탈 없이 살 거야! 다짐한 것도 아닌데. 절대적 어떤 존재가 분명 무력한 내 속삭임을 듣고 고생 좀 해보라는 못된 심보를 부린 게 틀림없다. 2021년은 폭탄 같았다.


스물셋은 스물, 스물 하나, 스물둘, 스물넷 보다 어감이 특이하지 않았다. 올해 안에 꼭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없었다. 그냥 별일 없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스물셋은 스물넷을 향하는 징검다리 같았다.


아이유의 스물셋을 들으며 잠에 들었던 1월 1일, 아. 1월에는 L을 처음 만났다. 1월 23일. 1월은 그 친구와 매일 전화하고 연락하며 행복해하다 보니 전부 지나가 있었다. 알차게 빈틈없이 사랑하며 보냈다.


2월에는 B 회사에서 이직 제안을 받았다. 내가 근무했던 스타트업 A은 물살이 빠르고 인원도 자주 바뀐다. A에서 2년 조금 넘게, 물살을 비집고 들어앉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점점 지루해졌다. 그 틈을 타 친한 후배가 초기 스타트업 B의 서비스 교육직을 제안했다. 2년 간 근무하며 조금은 잔잔해진 A의 물살에 진부함을 느끼고 있을 때, 다시금 초기 스타트업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으니 조금 설렜다. 보상도 괜찮았고, 열정적인 동료들도 보기 좋았다.


3월에 A를 나왔다. 나는 A를 가장 오래 함께 한 인원 중 한 명이었다. 2년 전 A는 10명 남짓 되는 인원들로 구성된 작고 일 벌이기 좋아하는 회사였다. 너무 사랑했고 애틋했던 서비스들이 있었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게 성장한 나의 20대 초반이 있다. 많은 사랑을 줬고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루의 절반 이상을 머무르는 회사가 밉지 않았기 때문에, 발걸음을 떼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이렇게 맺고 끊는 것을 또 한 번 연습했다. 그리고 첫 개강을 했다. 21학번이라는 페르소나를 하나 더 만드느라 꽤나 고생을 했다. 비대면이라 동기들을 잘 알지 못했고, 1학년 나부랭이는 전공을 많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 제주 여행을 했다. 혼자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하고 좋은 노래를 찾기도 했다. 책도 읽고 술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사진도 찍었다. 난 생각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4월 1일 자로 B에 입사했다. 생각보다 훨씬 체계가 없었고 어려웠다. 모두가 어렸다. 스물셋인 나보다 어린 구성원들도 있었다. 또, 작은 조직일수록 리더는 권위적이 되는 걸까? 생각했다. 나를 교육 담당자로 채용한 이유를 한 달 내내 고민했다. 대표님께서는 개발, 디자인, 교육, 운영, 마케팅 모든 부분을 마이크로 매니징하셨고, 나는 매일 밤 잠에 들 때면 “대표님도 참 힘드시겠다” 는 생각을 했다. 한 달 내내 나를 한 번만 믿어달라고 어필만 했던 것 같다. 각 직군에 한 명씩밖에 없는데, 결정은 모두 대표님께서 하셨다. 안 되면 니 탓, 잘 되면 내 탓. 욕도 하셨다. 어려웠다.

피곤하고 어려운 4월의 끝,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난 이후 처음으로 한 달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내가 그만둔 뒤에도 대표님은 자꾸만 내가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내 구성원들에게 전달했다. 서비스 취지가 좋아 함께 잘해보고 싶었는데, 직접 내부에 들어가 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B 때문에 A를 퇴사한 것이 아주 가끔 후회가 되었다. A의 동료들이 가끔 전화를 해 돌아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L은 B의 상황을 나보다 더 마음에 안 들어했다. 그래서 종종 싸웠다. 힘들어하는 나를 많이 신경 썼던 L의 미간이 가끔 생각난다. 화내는 L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말은 하지 못했다.


5월 1일에는 L과 처음으로 같이 여행을 갔다. 우리는 앉아서 멍하니 속초의 바다를 보고, 함께 회를 먹고, 숙소까지 걷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달리기도 했다. 저녁에는 둘 다 와인을 마시고 취해 코를 골며 자고(나만 골았을 수도 있다.), 아침에는 맑게 갠 하늘 뒤로 보이는 설악산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내가 좋아하는 서점에 함께 가 나란히 방명록을 남기고,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아무 모래사장이나 풀썩 앉았다. 맥주를 마셨고 같이 노래를 들었다. 백수의 시작을 L과 함께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던 것 같다. 동시에 7월에 입대를 하는 L을 떠올리며 본격적으로 우울해졌다. 아, 그리고 5월 20일 자로 운전면허를 땄다. 도로주행 시험에 떨어진 게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막 울었던 것 같다. L은 난이도가 너무 어려웠던 거라며 나를 달랬고, 너무 쉽게도 달래진 나는 다음번 도로주행에서 L의 응원을 생각하며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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