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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Jan 15. 2023

스물넷 그리고

2022년을 보내는 회고글을 작성하려고 마음먹은 게 벌써 두 달 전이다. 일 년 만에 사람이 왜 이렇게 엄격해진 건지, 마땅한 회고 포맷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보니 한 글자 쓰는 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날 때 그리고 기분이 내킬 때마다 틈틈이 작년의 키워드들을 아이패드에 나열해 보곤 했는데... 매번 키워드들이 일관적이지 않은 걸 보면 꽤나 절대적이지 않은 한 해를 보냈는가 보다.


나는 대단히 방황했다. 방황할 때면 내 곁에는 오직 나만 남는다. 그래서 스물네 살의 나와 많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같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욕도 하고 허튼짓도 많이 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큰 사고를 치기에는 용기가 없어 그저 여기저기 많이 깎이고 부딪히고 슬퍼했다. 같이 글도 많이 썼다.


학교를 다녔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다른 사람의 우울에 점수를 매기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감정은 지나가기에, 그들의 우울도 곧 지나갈 것이기 때문에 애써 고쳐주려고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 우울을 그렇게 맞이하기 때문이다. 나의 우울을 존중하는 만큼 타자의 우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멋진 우울을 실컷 즐길 때 그저 가만히 있어주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이별을 했다. 꽤나 쉬웠던 이별부터 애틋했던 이별까지 많은 마무리를 겪을 수 있었다. 숨 쉬는 법을 잊은 것처럼 울던 날도 - 옳은 선택이라며 나를 다독이던 날도 모두 아득하게 멀어졌다.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이 위험한 것처럼, 이미 찍힌 점과 같은 과거를 내 존재와 동일시하는 것도 위험하다. 슬픔이나 배신감, 죄책감 같은 것들이 나를 옭아맬 때는 내가 그저 세상의 유기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없던 일이 되지는 않지만, 이러한 것들이 깊은 곳까지 스며들지 않게 할 수 있다.


일을 했다. 프로이트는 "일과 사랑이 인간됨의 초석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일을 잘하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상태의 인간을 건강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프로이트 시선에서 2022년의 난 매우 불건강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말 끝에 붙이며 하루종일 커뮤니케이션을 하다가 빠져나온다. 일의 바깥에서는 저 아래까지 추락해 있는 내 목덜미를 잡고 힘껏 끌어올리는 것이 첫 번째 과업이다. 그렇게 해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게 너무 싫었던 3년 차까지는 무조건 뻔뻔하게 나가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잘못 처리한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서 그랬다. 이 험난한 세상 헤치고 나가려면 고개 빳빳하게 들고 어쩌라고요를 입술 바깥에 붙이고 살아야지. 그리고 사실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아꼈던 건, 내 죄송은 순도 100%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뱉을 때면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완벽한 죄송 덩어리를 던지는 거다. 그래서 잘 안 했다. 마음에서 안 우러나는 미안함 뭉쳐봤자 금방 녹아버릴 가짜 사과일 뿐이니까. 그래도- 그래도 지금은 괜찮다. 더 나아질 내일이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올해가 되어버린 2023년은 올해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들로 구성된 한 해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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