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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름모 May 17. 2023

그때의 나와 마주해보고 싶은데

비문

기타 수업에 가기 전 악보를 정리하다가 이면지 등짝에 쓰인 익숙한 필체를 발견했다.

나는 이런 일이 참으로 잦은데,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무작정 앞에 있는 종이에 남기는 것 말이다. 내가 쓴 것이 분명한 글이지만 당최 무슨 의미를 품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그때의(언제인지도 모르는) 나를 테이블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물어보고 싶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마도 나는 임의로 타인의 마음을 판단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들었다 놓으며 그의 생각을 파악하고 앞서 상처받고 앞서 눈물짓던 날들을 돌아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돌아보니 내가 생각하던 그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맞아, 그런 생각들이 내 호흡을 감싸고 있을 때가 있었지.


집 정리를 하다 보면 2년 전의, 길게는 10년 전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남긴 메시지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나를 잠식하고 있던 생각들을 휘갈겨 쓴 메모나 차마 보내지 못한 편지들도 방 여기저기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 학창 시절의 사진을 볼 때면 힘들었던 기억보다 즐겁게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먼저 나는 것처럼 괜히 나는 이런 것들이 반갑기만 하다. 분명 그 시간에 담겨있던 나는 아주 힘들고 고된 생각을 어떻게든 게워내기 위해 말들을 토해냈을 텐데...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이는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순간이 점점 적어지기 때문인데, 즉 기억을 할 만큼 충격적인 순간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 즐거움과 그 괴로움과 그 신기함이 눈을 떠 세상에 나온 이후 처음 마주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영원히 그 시간에 멈춰있을 것처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점점 이미 겪어본 일들의 반복이 모여 삶을 만들고 있음을 느끼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저 글씨에 담긴 나의 시간은 꽤나 느리게 흘러갔을 텐데, 꽤나 고된 시간이었을 텐데도 나는 돌아보니 이 마저 반가워버린다.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모든 것을 미화해 버리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는 것도 그럼 언젠가는 미화되는 것일까?

이렇게 나는 또 직접 살아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들을 고민하며 오늘의 시간을 조금 느리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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