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간혹가다 “난지금정말행복해”라고말하는사람이있기도 하지만... 이런사람들은대부분그동안간절히바라던것을지금막이룬사람이거나, 혹은 이제막사랑에빠졌다거나.. 이런부류의사람들이다. 이러한사람은누가봐도행복한사람이다.
이러한사람들의한가지공통점을찾을수있다면 ‘더이상바라는것이없는’ 상태에있다는것이다. 하기사 간절히 원하던 것을 막 이루었는데.. 이제 막 사랑에 빠졌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바로 평온한 상태이다. 잔잔한 호수와 같이 평안한 마음의 상태이다.
행복한사람과미친사람의공통점
그동안우리는행복에대해너무나 정서적인측면, (혹은정반대로물질적인측면)에서만생각해왔다. 그래서행복하냐하는질문에… 선뜻대답못하고망설이게 된다. 물질적으로나감정적으로행복한상태가아니라고생각하기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하면우선입꼬리가귓가에걸려있는모습을생각하게 된다. 기쁨에겨워마냥입이다물어지지않는상태 말이다.살다보면그런순간이오기도하겠지만... 만일하루종일그러한모습을하고있는사람이혹시주변에있다면… 우리는그사람을잘보살펴주어야 한다. (십중팔구머리에커다란꽃을꽂고있거나입가에침을흘리고있을것이다)
행복은감정이아니다
행복은 감성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감정만의 상태는 아니다. 만일 감정만의 상태가 행복이라면 우리는 약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러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행복이라 일컫지는 않는다. (약 빤 놈이 행복하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이와 비슷하게 사랑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 하면 우선 뜨거운 열정 등의 감정적인 부분을 생각한다. 한 순간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은 뜨거운 마음, 손등만 스쳐도 짜릿함이 느껴지는 어떤 감정.. 그런 것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랑에는 그러한 면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만일 나만의 감정이 사랑의 전부라면 경우에 따라서 그것은 굉장히 무서운, 소름 끼치는 모습을 띌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나의 좋아하는 감정일 뿐이다.
사실 사랑은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우리는 소위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 개념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사랑’이라고 부를 뿐이다. 우리의 언어가 가지는 한계다.
짜장면이먹고싶다는욕망에집착하다가마침내그것을먹게되었을때우리는행복감을느낀다. 그러나포만감을느끼는순간그행복감은사라지기시작하고그것이사라진빈자리는어느새권태로채워진다. 이러한권태는한동안지속되다가우리의욕망을자극하는새로운사물이나타나서그것을갖고자하는욕망에다시금사로잡히게될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또다시충족되지못한새로운욕망때문에괴로워하게 된다. 짜장면이 주는 만족감이 그렇고, 새집, 새 차,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이 주는 만족감과 행복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염세주의 철학자는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지만 천국이든 지옥이든, 설사 존재한다 할지라고 우리는 그곳에서 역시 고통에 시달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모든 욕망이 충족된 천국에서는 권태로 인해 고통에 시달릴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옥에서는 온갖 결핍으로 인해 또한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허탈하지만 슬프게도 공감이 되는 말이다.
항상 깨어 있으라
우리가 이러한 비극으로부터 헤어 나오는 방법은 ‘항상 깨어있는 것’이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말은 잠을 자지 말고 버티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본질적인 것'을 구하라는 말이다.
우리의 평안함과 행복감을 어떤 외부적 조건이나, 상대적인 것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찾으라는 말이다.
사실, 참된 평안과 만족은 상대적인 것, 조건적인 것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참된 평안과 만족을 상대적이고 외부적인 것으로부터 찾는 것은 마치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같은 일이다.
파랑새
어려서읽었던 ‘파랑새’라는동화속에서도..
꿈속에서그토록열심히좇았던파랑새는아침에깨어보니자신의방안에늘그냥그대로있었다.
서두에.. 행복을(만족함을) 그저더이상바랄것이없는상태라고말했을때
이말이무언가거창한 말이 아니다.
더이상바랄것이없는상태란그리거창할것이없다. 그저자연스러운상태일뿐이다. 마치파랑새가방안새장에 늘 있듯이.. 포도나무가지가나무에붙어있듯이자연스러운상태일뿐이다. 가지는나무에붙어있는이상더이상바랄 게없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우리의구원에대한사도바울의설명을잘들어보면 (무엇인가복잡하게많은말을하고있는것처럼보이지만) 실은한가지사실을줄기차게, 일관되게강조하고있는것을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