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째 다이어트하는 아내에게..
언젠가 유튜브로 어느 교수님의 강의 영상을 보다가 강의 중
교수님이 농담 삼아하신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교수님의 아내가 28년째 다이어트를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28년째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말은 곧
지난 28년 동안 다이어트에 실패했다는 소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내 분께서는
다이어트로 몸부림을 치신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교수님의 아내 분은 다이어트에 관한
거의 모든 방법을 섭렵했을 뿐 아니라
관련 이론에 대해서도
거의 통달했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은 그만
아내에게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당신 혹시 다이어트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걸
마치 다이어트를 하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야?”
이후로 한 달 동안 아내로부터
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했다는…
재미있지만 동시에 뼈 있는 농담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사회 여러 곳에서
이러한 면을 발견하곤 합니다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토론을 벌이는 것을 두고
마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러한 모습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부터 교계에는 ‘개혁’이라는 말이
넘쳐납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폭넓게
교회에 뭔가 새로운 변화,
즉 개혁적인 모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즘 들어
교회 개혁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목사님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교계의 개혁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실감 나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교회가 정작 왜 개혁이 필요한지
혹은 사회로부터 왜 욕을 먹고 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그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것으로
마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본다면
교회의 개혁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집중하기보다는
단지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이냐 를 따지는
교리적인 구분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우리는 너희와 달라
너희는 기복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이지만
우리는 성경적이고 정통이야’
라는 말로써 교회 개혁을
때우려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개혁한다고 했을 때
이는 단지 정통과 이단의 구별이나
기복주의 또는 세속주의 와의 결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 애당초 의도하셨던
본래의 가르침을 회복하자는
뜻이 더 강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래 의도는
백성들의 삶 가운데 유대교라는
종교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제사를 해야 하고,
십일조를 바쳐야 하고
금식을 해야 하고 등등의
종교라는 이름으로 삶을 억누르고 있던
각종 규율과 구속으로부터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려 했던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래 의도였을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만 살펴보면
당시 종교인들, 즉 랍비나 바리새인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모세 오경을 달달 외며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온갖 일에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가르침의 대부분은
씨 뿌리는 자 이야기,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이야기
다섯 달란트 이야기, 양과 염소 이야기 등
생활 속의 비유를 통한 가르침이었고
여기에는 어떠한 종교적 냄새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간혹 말로써 도저히 전달될 수 없는 내용은
기적을 통해 보여 주시기도 했지만
이럴 때면 언제나 기적이 아닌
'표적'이라고 강조하시며
이를 통해 (놀라워하기보다는)
깨우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침에
(당시의 성경이었던) 구약을 사용하신 것은
단지 잘못 오해된 구약의 가르침을
바로 잡을 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사용하신 성경 또한
정통 히브리어 성경이 아닌
헬라어 번역판 성경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존재하지도 않았기에
예수님은 그야말로
그 어떠한 경전의 가르침에도 메이지 않고
진리를 전하기 위해 애쓰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래 의도는
백성들이 유대교라는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진리가 주는 자유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자는 예수님이
유대교는 잘못된 종교니까
이를 벗어나 제대로 된 종교인 기독교를
창시한 것 아니냐 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종교를 만든 적도 없고
이를 의도한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유대교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종교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룰 누리는 것이 중요했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는 데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기독교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조직이나 제도 종교로서의
기독교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물론 새로운 가르침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시 새로운 분파를 형성하고 있던
에세네파 등과도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 사후
제자들이나 사도 바울 시대에도
크게 변하지 않아
기껏해야 진리를 추구하는
새로운 의식 운동에 불과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 사후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에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제국의 공식 종교로
공인한 이후의 모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저 소규모 모임에 지나지 않았던 교회가
오늘날과 같은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기독교가 제국의 국교로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로마 제국의 웅장한 관공서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토록 허용받기도 하고
또는 교회 건물을 신축할 토지를 제공받거나
각종 세금을 면제받는 등
교회에 권력과 재산이
쌓이게 되기 시작한 이후..
또한 교회 모임의 책임자인 감독, 주교의 위상이
세상 권력을 능가하는 권력직으로
변하기 시작한 이후의 모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로마 제국 국교화 이전의 기독교가
자발적인 민중 운동, 의식운동의 성격이 짙었다면
국교화 이후의 기독교는
오늘날과 같은 종교 제도 아래
조직을 갖춘 하나의 종교 세력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기독교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제도 종교가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종교 제도가 하나의 세력이 되어
백성들의 자유를 억압했던 당시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예수님께서
오늘날 지금의 권력화 된 가톨릭 교회나
개신교 교회를 본다면
아마 혀를 끌끌 차며 통탄해하실 것입니다
종교 개혁을 영어로는 리 포메이션이라고 합니다
이는 '다시 형성한다'라는 뜻입니다
즉 개혁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고장 난 데를 군데군데 수선하는 의미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의 외침은
기본으로 돌아가자
처음으로 돌아가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리킨 처음 이란
로마 제국 국교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예수의 가르침이 생생히 살아있던
그 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교회는 개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본래부터 교회는 어떤 조직이나 제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저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간혹 목사님들이 설교 중에
교회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특별히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라며
특별한 교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는
'모임'이나 '민회'를 뜻하는 보통 명사로서
당시 로마 사회에서 흔히 쓰였던 단어였지
오늘날 교회를 가리키기 위한 특별한 단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교회를 개혁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지금의 교회와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원하는 개혁은..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회의 개혁이란
지금의 교회에서 행하고자 하는
정통과 이단의 구별도 아니고
세속주의와 기복주의 근본주의로부터의 결별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교회의 개혁은
단지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려 하신
예수님의 처음 가르침과
의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교회에 개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거듭남, 교회의 중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꿔 말하 지면
지금의 교회가 사라지고
교회가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함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