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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30. 2020

게이밍 컴퓨터 때문에 교회가 깨질 뻔한 이야기..

4대 1로 혼자 맞짱 뜬 썰..

사건의 발단은 바로 어제 주일 오후였다.


참고로 나는 새로운 예배 모델을 꿈꾸는 목사다.


나는 젊어서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된 경우가 아니라 아내의 암투병과 그로 인한 사별 후 겪게 된 일련의 영적(?) 사건에 이끌리어 목사가 된 케이스다.

한국에선 종합상사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사별 후 아이들과 미국에 건너와 뒤늦게 신학을 하고 미국 PCA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재혼을 하여 새가정도 꾸렸다.


이후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나왔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교회 이름을 하나교회로 지었다. 하나 됨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 교회가 둘로 쪼개질  뻔한 이야기다.

교회 전통에 메이지 않고 자라온 배경 때문인지 나는 전통보다는 본질적인 부분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요즘 한창 교회와 관련된 뉴스들이 미디어에 오르내리면 마음이 참 불편해진다. 무언가 교회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고민하던 끝에 사례비가 보장된 안정된 직장(?)으로서의 교회를 나왔다. 예배의 본질을 되찾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평소의 지론대로 교회 간판 새로이 올리는 일은 사양하고 우선 집에서 예배모임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가정교회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목사의 설교가 마치 예배의 전부인양 오해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나는 언제라도 질문과 응답이 가능한 예배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규모 예배에서는 시도해 볼 수 없는 시도다.

우선 창세기부터 시작하였다. 먼저 창세기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내가 전체적인 개관을 설명해주고 맥락을 잡아 주면 한 주간 동안 가족들이 창세기 전체를 읽고 그다음 주에 질문거리와 느낌을 함께 나누는 식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은 기대 이상으로 열심히 읽었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읽은 것이 아니라 기특하게도 (내가 알려준 대로) 성경 저자와 대화하듯이.. 마음속으로 질문을 하면서 읽은 듯 수많은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 내었다. 정말이지 활력과 기쁨이 넘치는 예배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출애굽기를 이런 식으로 함께 읽기로 했다. 이번에도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지난주처럼 전반적인 출애굽기 개관과 맥락, 그리고 읽는 요령들을 설명해 주었다.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마치고 성찬식 겸(?)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내가 실력을 발휘하여 맛있는 점심을 함께 나누며  우리 모두가 한 몸임을, 한 가족임을, 그리고 한 교회임을 마음껏 누렸다.

 근데 딱 여기까지 였다. ㅠㅠ

설거지를 마친 후 아내는 아이들 컴퓨터를 알아보러 BestBuy에 가자고 했다. 안 그래도 올해 둘째 딸아이는 고등학교를,  막내는 중학교를 졸업했기에 졸업 선물로 무얼 해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딸아이에게는 대학생이 되는 기념으로 노트북을 사주기로 했고 막내에게는 데스크 탑 컴퓨터를 사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뛸 뜻이 기뻐하며 따라나섰다.

딸아이의 노트북을 고르는데 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여자아이라서 그런지 그저 디자인 예쁘고 성능 고만고만한 노트북을 골라주니 너무나 좋아한다. 아내도 만족해한다. 문제는 막내 민수의 데스크톱이었다.



딸에게 합리적이면서도(가격적으로) 만족스러운 노트북을 골라준 나는 자신감을 얻어 막내가 쓸만한 데스크톱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너무나 종류가 많았지만 나의 기준은 간단했다. 심플한 디자인에 고등학교 내내 쓸만한 최신형 사양.. 찾아보니 인텔 i7 core에 램 16기가. 하드 SDD로 500기가짜리 24인치 터치스크린 올인원 컴퓨터가 눈에 확 들어왔다. 메이커를 보니 Dell이었다. 이 정도 사양이면 웬만한 어른들 컴퓨터보다 좋은 사양이었다. Dell 특유의 심플하면서도 남성적인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가격을 보니 1000불이 넘었다. 보통 데스크톱이 500~800불 선인걸 감안한다면 비싸긴 했지만 초등학교 때 사준 컴퓨터를 지금까지 군말 안 하고 사용해온 막내에게 고등학생이 되는 기념으로 이 정도는 사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좋은 컴퓨터를 골랐다고 생각한 나는 의기양양해서 아내와 아이들을 찾았다. 그런데 아내는 이미 베스트바이 직원에게 컴퓨터를 추천받아 놓고 그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와서 보니 아내 앞에 놓인 컴퓨터는 게이밍 컴퓨터였다. 평소 아이들이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 열중해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던 아내였기에 설마 저걸 사려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다가선 순간.. 아내는 나를 발견하고는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우리 이거 사주자”

이때부터 시작된 아내와 나와의 설전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아내의 생각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1) 이왕 사주는 것이니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좋은 컴퓨터 사주자.
 2) 요즘 애들은 모두 게이밍 컴퓨터 가지고 있으니 민수만 없으면 애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뒤떨어질 수 있다.
 3)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하는데 컴퓨터 때문 문제 생기는 일이 없으려면 성능 좋은 게이밍 컴퓨터이어야 한다... 대체로 이런 논리였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서로 달랐다.
아내는 “... 그러니까 게이밍 컴퓨터..”
나는 “... 그러니까 올인원 컴퓨터...”.          

내 생각은 이랬다.
1) 이왕 사주는 것이니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것 사주자 (아내와 같은 생각이다)
2) 모든 애들이 모두 게이밍 컴퓨터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내가 고른 최신형 All-in-One 컴퓨터로도 충분히 아이들과 게임하며 어울릴 수 있다.
3) 코로나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데 게이밍 컴퓨터가 꼭 필요하지 않다.

도무지 의견이 안 모아진다.....  환장한다.

물건을 사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아내와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내는 무척이나 검소하다. 결혼한 이후로 여태껏 자신을 위해 제대로 된 외출복 한 벌을 산 적이 없다.  몇 센트 아끼려고 마켓을 두세 군데 옮겨 다니며 장을 본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든지 가정을 위한 지출은 언제나 최고급을 지향한다. 가구를 하나 구입하더라도 언제나 비싸더라도 더 좋은 것을 선호한다.

반면에 나는 푼돈은 아끼려고 하지 않는다. 운전하다 구걸하는 홈리스를 보게 되면 항상 5불 이상을 쥐어준다. 1~2불 아끼려고 다른 마켓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한 군데서 필요한 것을 모두 산다. 가격이 비싼 것을 구입할 때는 최고급보다는 항상 ‘가성비’를 따지는 편이다. 그리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막내에게 게이밍 컴퓨터를 사주는 것은 확실히 ‘가성비’가 떨어지는 결정이다. 나의 교육방침과도 어긋날뿐더러 가격은 훨씬 더 비싸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결정인 것이다.

그러나 아내에게 있어서 자녀에게 사주는 컴퓨터는 가성비보다는... 다른 아이들과 게임할 때 밀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그러니 의견이 좁혀지질 않는다.

나의 자녀양육 방침은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는 데 있다. 다가올 AI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능숙하게 컴퓨터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열심히 안 가르쳐 주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알아서 습득한다. 더구나 나는 (개인적으로) 궁극적으로 AI 시대를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이들에게 오히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빠로서 나의 자녀에 위한 교육방침이다.  

물론 앞으로의 시대가 AI 시대가 될 것이고 지금의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컴퓨터에 친숙해져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막내가 게임을 능숙히 다룰 줄 아는 아이가 되기보다는 책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나 또한 막내가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비록 게임 전용 컴퓨터는 아니지만 최신 사양의 컴퓨터를 사주고 가끔 게임하는 것도 허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이들에게 게임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과...
아예 게이밍 컴퓨터를 사주며 편하게 게임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더구나 막내는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게임에 중독되지도(?)..  게이밍 컴퓨터를 사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만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가지고 싶을 뿐이란다.

이런 아이한테 떡 하니 번쩍번쩍 불이 들어오는 최신형 게이밍 컴퓨터를 자기 방에 넣어주면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환상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한 번 신세계를 맛본 아이에게 제아무리 게임 그만하고 책을 읽으라고 해도...  이것은 아이한테나 부모한테나 똑같이 스트레스받는 일이  될 것이 뻔하였다.

물론 막내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친구들과 새로운 게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게이밍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아이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기 방에 게이밍 컴퓨터를 설치해 주는 것과 일반용 컴퓨터를 설치해 주는 것은 아이에게 엄연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끝없는 설전 끝에 화가 난 나는 “당신 맘대로 해!” 소리치며 돌아 앉았고 이에 화가 난 아내는 정말로 맘대로 해버렸다.. (아 놔 이거..)

떡하니 게임 컴퓨터를 사버린 것이었다. 나는 오는 길에 차 안에서 한마디도 안 했다. 아이들과 아내는 연신 내 눈치를 보며 게이밍 컴퓨터를 산 이유의 정당성을 설명하고자 했지만 소심한(ㅋㅋ) 나는 가장으로서의 나의 의견이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상해 대꾸도 안 했다.

아내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불안했는지 집에 돌아와  큰 아들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학생이고 컴퓨터와 게임 세계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아는 큰 아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중재를 해줄 것이라고 믿은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큰 아이는 게임 컴퓨터를 고른 엄마의 ‘뛰어난 안목’에 감탄을 하며... 연신 “엄마 존경해요..”를 외쳐댔다. (으이그 지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 나는.. 또다시 목청껏 나의 논리를 설명했다. 막내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나도 반대다. 그러나 대놓고 게임 컴퓨터 사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쩌고 저쩌고... 한 동안 가족끼리 또 한바탕 설전이 오고 갔다..


팽팽히 의견에 서로 지친 나머지 내린 결론은... “일단 한번 거실에 설치해 보자”였다. 14일 이내에는 반품이 가능하니 한번 사용해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이게 이름만 게임용이지 그저 성능 좋은 데스크톱에 불과하니 어쩌면 아빠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큰 애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서서 그 문제의 게이밍 컴퓨터의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우람한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 면이 투명하게 되어있어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전원을 켜니 컴퓨터 내부에 번쩍이는 불이 들어온다. 꼭 PC방 컴퓨터 같아서 더 맘에 안 드는데 아이들은 멋있다고 난리가 아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편 마음속으로 “그려 애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나만 혼자 반대하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 맘에는 안 들었다.

나는 애써 쿨한 척하며 “ 맘대로 들  하세요.. 대신 애들 게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는 말.. 내 앞에서 했다간 각오하세요.. “라고 엄포를 놓으며 위층으로 올라와 버렸다.

오늘 아침에 내려와 보니 컴퓨터가 다시 박스에 포장되어있었다. 어찌 된 거냐고 물어보니 전원은 들어오는데 윈도 10 설치가 안되고 제대로 작동이 안 돼서 반품하기로 했단다. ㅋㅋ

반품하고 나면 다시 원점이다.. 다시 새로운 겜용 컴퓨터냐 아니면 올인원 위도우 10 컴퓨터냐...

근데 이 와중에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컴퓨터 하나 사는 문제에 온 가족이 서로의 논리를 내세워 가며 토론하고 의견을 말하고 반박하고 서로 웃고 떠들었던 추억을 만들었다는 점이다.(비록 피곤하긴 했지만..)

이제 다시 한번 다가올 막내의 데스크톱 컴퓨터 결정 문제를 앞에 두고.. 이제 나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우리 가정의 하나 됨을... 우리 교회의 하나 됨을 우선시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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