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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31. 2020

하마터면 열심히 믿을 뻔하였다

나는 브런치의 하완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쓴 책은 모조리 다 읽었다. 모조리라 해봤자 2권밖에 안되어 읽기 쉬었다. (하여간..)

그중에서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하였다>라는 책을 좋아한다. 이 쳅터의 제목은 그에 대한 오마주(hommage)이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순전히 그 때문이다. 나는 엘에이에 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 서적 구하기가 수월치 않아 리디북스라는 전자책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어느 날 리디북스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눈에 띄는 제목과 표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이었다.

이거 뭐야.. 하는 기분으로 읽다가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아마도 그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준 수많은 독자들이 그러했듯이..


참 통쾌했다. 후련했다. 무엇보다 B급 감성이 나와 잘 맞았다. 나도 그런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가만있자.. 근데 나는 목사다. 목사가 B급 감성이랑 잘 맞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생각하다가 '하마터면 글 쓰는 거 포기할 뻔했다'.


아니 근데 왜 목사는 그러면 안되는가? 하완 작가는 B급 감성으로 이토록 훌륭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수많은 삶에 지친 사람들이 그로부터 '은혜'를 받는데..


목사인 나는 과연 그의 반만큼이라도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하완 작가처럼.. 그의 톤으로 한 번 외치고 싶은 것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믿을 뻔했노라고..





우리는 무엇이든지 열심히 할 것을 요구당한다. 늘 최선을 다 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옳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옳음을 누가 정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남들이 그것을 옳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한 마디로 주체성의 상실이다.. 쇼펜하우어가 인용한 세네카의 말을 굳이 내가 인용하자면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성경 속의 예수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논쟁을 살펴보면 늘 같은 주제가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에 얽매여 모든 것을 판단하였다. 전통에 부합하면 옳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돌로 쳐 죽여야' 할 만큼 나쁜 것이다. 그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전통이 뭘 의미하는지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들의 조상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지키기 위해 (그것도 충실히 지키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과연 그러고도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식일 계명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나 결코 왜 그렇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운전도 하지 않는다. 불을 피워서도 안되기에 가스레인지도 못 켠다. 음식은 하루 전에 이튿날 음식까지 미리 장만해 둔다. 안식일에는 비가 와도 우산을 펴지 않는다. 그냥 맞는다. 엘리베이터도 안식일에는 타는 사람이 없어도 층마다 자동으로 선다. (환장한다..)


그들은 결코 왜라고 묻지 않는다. 그저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고 조상 대대로 그대로 지켜 왔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그토록 사랑 많고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유독 한 부류의 인간 앞에서는 뚜껑이 열리시고 '독사의 자식들아' 하며 쌍욕을 날리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참고로 뱀은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로서 우리말로 치면 개 X 끼들아 보다 더 심한 욕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 앞에서 일부러 보란 듯이 안식일 규정을 어기신다. 안식일에 밥 해먹을 불 켜는 것조차 일로 규정하여 못하는 그들 앞에서 손 마른 사람의 병을 고치신 것이다. 즉 의료 행위를 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안식일을 어겼다고 펄펄 뛰는 바리새인들에게 한마디 일침을 놓으신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태복음 12장 11~12절)





펜데믹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란스러워한다.


".. 그래서요 목사님 교회에 나가야 돼요? 말아야 돼요?"...


왜 목사에게 묻는가? 왜 자기 신앙, 자기 구원의 문제를 목사의 판단에 떠 맡기는가?


나도 목사지만 난 내가 생각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솔직히 내 신앙 하나 지키는 것도 벅차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기에 하는 말인데.. 비록 거실에 미국 PCA 교단 목사 안수증을 금박으로 두른 액자에 넣어 떡하니 걸어 놓은 틀림없는 정통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팬데믹 때 화장지를 박스 채로 사서 쌓아 놓아야 안심이 되는 그저 보통 시민이다.


그런 나에게 왜 자기 구원을 맡기려 하나? 혹 교회 안 나가서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때.. "전 그저 목사가 하라는 대로 했는 데요" 면피하려는 속셈은 아닌가?


교회를 죽어서 천국 가려는 목적으로 다니는 사람... 열심히 다니지 마라.. 천국 가서 험한 꼴 당한다.


예수를 마치 보험 드는 마음으로 믿는 사람.. 열심히 믿지 마라... 그 예수님한테 귓방망이 얻어맞을 수 있다..


진정한 신앙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다.

'천국은 여기에 있거나 저기에 있지 않고 오로지 너의 마음속에 있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마음속 천국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마음속에서 천국을 발견한 사람은 집에서도 천국에 있는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교회 예배당 속에서도 찾아 헤맬 것이다.


펜데믹의 폭풍 속에 헤매는 자여..

출렁이는 거친 풍랑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이 평안히 주무시고 있는 마음속 깊이 닻을 내려라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골방을 찾아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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