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충격적인 결말

구원이 작동하는 방식..

by 이동엽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인 메시지 만을 전하고자 노력하는

유튜브 하나교회 이동엽 목사입니다


오늘 전해 드릴 말씀은 선한 사마리아 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 비유는

굳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누구나 아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도중에

강도를 만나 죽게 되었을 때,

유대인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피해 지나가고

유대인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 때문에 사마리아 인은 우리에게

착한 사람의 대명사쯤 되어버렸지만

사실 사마리아 인이라는 호칭은 그리 명예스러운 호칭이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 인은

서로 말도 섞기 부담스러운 경멸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마리아 인을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이 비유는 어떤 유대인 율법 교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이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어떻게 하여야 영생, 즉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묻습니다


답을 몰라서, 답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 질문에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그러자 율법 교사는 율법의 전문가답게 막힘없이 대답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였나이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너무나 간단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정확한 대답입니다


사실 율법의 가르침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선을 행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낼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킬 수는 없습니다


법이란 것은 늘 잘 지키다가 어쩌다 한번 실수한 것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지 못합니다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0년 동안 무사고로 운전을 했다 하더라도

잠깐 실수하여 한번 교통사고를 냈다면

10년 동안의 무사고와는 상관없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율법 교사의 고민도 이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수많은 이웃 중에 누구 하나에게라도

소홀히 하여 원망을 사게 되면

구원을 놓치게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뚱이는 하나이고

이웃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이 선한 사마리아 비유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를 통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시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바로 예수님의 대답 방식입니다


율법 교사의 질문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내가 선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선을 베풀어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질문에 오히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되물으십니다



모든 인간이 벗어나지 못하는 한 가지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라는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입니다


인간은 모두 내 인생은 나의 것이며

내가 나의 왕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모두 내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구원 또한 내가 해결해야 할

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율법교사는 당연히 자신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선행을 베풀어야 할 대상 즉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를 묻습니다


이웃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그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짐승 같은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안인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까지 나의 베풂의 노력이 돌아갈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율법교사가 자신의 왕국에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를 묻기보다는

도리어 "내가 누구의 이웃인가? 를 묻기를 원하십니다


이웃은 내 입장에서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왕국에서 나와서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기꺼이 인정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그때 비로소

남이 나를 이웃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삶으로써 이웃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지

내가 내 멋대로 이웃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구원 문제와 관련시켜 본다면

구원이란 선한 행위에 대한 대가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기꺼이 순종함으로써,

즉 그분이 사랑하는 자를

나 또한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사랑함으로써

즉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반응으로써

구원이 주어진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공로가 아닌 사랑입니다.


율법이 아닌 은혜이고,

행위가 아닌 믿음인 것입니다


율법 교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구원은 내가 행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과 협상하여 얻어내는 보상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을 깨달아 알 때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참된 사랑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비유말씀의 결말은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너희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누가 나의 이웃이 될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가서 너희도 사마리아 인 같이

남에게 이웃이 되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새 나 또한 이웃에 둘러싸여

바로 이 땅 가운데 (천국과도 같은)

구원받은 사람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성경이 이혼을 금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