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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Nov 01. 2020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듯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종교를 넘어선 어떤 것이다.

본 회퍼라는 신학자가 있었다. 그는 나치의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한 죄로 체포되어 39세의 나이에 처형당했다. 그는 비록 목사의 신분이었지만 “악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라며 히틀러 암살에 적극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었다.

그가 22세 때 고등학생들에게  ‘믿음의 본질’에 대하여 강연한 적이 있었다. 이 강연에서 그는 ‘기독교의 본질은 종교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인물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는 죽은 것,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며 기독교의 핵심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것, 바로 하나님 자신이 생생히 자리하고 있다고 설파했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다. 생각해 볼수록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혼자 감탄하며 좋아하다가 문득 슬퍼졌다. 같은 목사로서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바를 과감하게 세상에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을까?
나도 과연 목사로서 기성교단을 향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외칠 수 있을까?

이렇게 스스로 반문해보다가 우울해진 것이다. 진리는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갖 구설수와 귀찮은 말다툼과 논쟁을 감수할 만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서이다.

마치 ‘나를 정말 사랑하나요?’라고 묻는 연인에게 ‘물론이지 사랑하지’라고 대답은 했지만 정작 마음속엔 ‘음.. 사랑하긴 하는데 목숨 바쳐 사랑하진 않아..’라는 생각이 들며 스스로의 순수하지 못한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는 느낌이랄까...

이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빌려 나도 한 번 외쳐본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고..

본 회퍼의 말대로
기독교의 본질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라면.. 그런 기독교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일요일 오전 10시에 교회에 나가 마치 대통령이라도 영접하듯이 엄숙히 설교 듣는 모습일까? 아니면 (요즘은 코로나로 교회에 못 나가니) 컴퓨터 앞에 자세를 바르게 하고 진지하게 모니터 속의 설교는 귀담아듣는 모습일까?

속시원히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 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흔히들 참된 예배를 말할 때면 기독교 초기의 초대 교회에서의 예배를 떠올린다. 아직은 종교적인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예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초창기 예배에서 진정한 하나님과의 대면이 가능했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소수로 모여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에 대한 깊은 이해를 서로 공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앎이 있었기에 그들은 서로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예배 가운데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참다운 예배가 절대자인 하나님과 대면하는 사건이라면 이는 지극히 영적인 사건이기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거나 동요되면 안된는 일일 것이다. 예수께서 골방에서의 기도를 강조하셨을 때에는 이는 그저 물리적으로 고립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심적으로 그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과 마음 상태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대규모의 예배모임에서 과연 이러한 하나님과의 대면이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

온갖 소음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오랜만에 인사 나누는 사람들과.. 수많은 해야 할 일등을 앞에 두고 과연 ‘영이신 하나님’과의 대면이 가능할까?

본 회퍼가 말한대로 기독교의 본질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라면... 

그 가운데 침묵속에서 내면 깊숙이 좌정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깊은 위로와 사랑과 환희와 기쁨을 맛보는 것이라면...  오늘날 부산스러운 주일 예배 가운데 이러한 기쁨을 과연 얼마만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각자 집에서 예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번잡한 주일 오전 풍경으로부터 잠시나마 떨어져 있을 틈이 생긴 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도 헛되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과연 코로나 사태를 우연히 방치하셨을 리 만무하다.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주어진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기독교의 회복을 원하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이 만든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내면속에 좌정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을 대면하는 기독교로의 회복말이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기간 동안만이라도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만끽하며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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