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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Nov 01. 2020

애매와 모호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아마도 1987년 초가 아니었나 싶다. 대학교 신입생으로서의 첫 교양과목인 ‘철학개론’ 수업 첫 시간이었다. 문과대 신입생 거의 모두가 함께 수강하는 과목이어서 200명 넘게 수용하는 K관 대강의실이 꽉 찼다. 모두들 얼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이였던 신입생 시절.. 그것도 중고등학교 내내 접해보지 못했던 ‘철학’이라는 과목..  때문에 기대와 설렘 등의 분위기가 묘하게 섞인 혼잡스러움이 강의실을 메웠던 기억이 있다.

종이 울리고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대학교 수업종 울리는 학교는 우리 학교 밖엔 없었단다..ㅠㅠ ) 잘 생각은 안 나지만 교수라기에는 젊어 보이는 분이( 아마도 강사분이셨던 것 같다). 들어오셔서 던진 질문 하나가 30여 년이 지난 지금 까지 기억에 남는다.

‘애매와 모호의 차이를 말해 볼 수 있는 사람?.. 갑자기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정말로 ‘애매모호’했다... 뭔 차이람? 같은 말 아니었어? 중고등학교 내내 한 번도 그러한 분석적인 사고 훈련을 받아 보지 못한 우리가 첫 대학 수업에서 받은 도전이었다.

강사분도 우리들의 멘붕상태를 충분히 예상했을 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계속 우리를 코너로 몰아가고 있을 때..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일어나 또박또박한 어조로 답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자랑스럽게도 우리 과 아이였다. 박춘신.. (춘신아 지금 이 글 보고 있나? ㅎㅎ )  

애매하다는 것은 어느 하나가 무슨 뜻이지 모르겠다는 것이고 (애매의 반대말은 명확..),

모호하다는 것은 둘 이상의 사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모호의 반대말은 판명..)는 뜻이라는 것이다.

아하 그게 그거 같던 말이 그런 차이가 있었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한 분위기의 철학 사조를 분석철학이라 하고 우리 학교의 철학과가 그 분야에서 꽤 유명했던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그 수업 이후 춘신이가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분석 철학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비트겐슈타인’이다. 철학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이름이다. 20세기가 낳은 인물 중 천재 중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여러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세계는 사실들의 총합이지 사물들의 총합이 아니다.’라든가 혹은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등이다.

모든 철학자들의 궁극의 관심은 아마도  ‘세계란 무엇일까? 세계의 본질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의 답일 것이다. 서양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탈레스는 세계는 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데모클리토스는 세계는 원자들로...  플라톤은 진정한 세계는 현상 너머의 이데아의 세계라 생각했다...  그 이후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기독교의 초월적 세계관과 맞물려 근대까지 인류 인식론의 주류를 이어왔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라는 말로써 세계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피력했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세계는 언어로써 그려질 수 있는 그림이었다.

마치 언어가 명사들(이름들)의 총합이 아니라 구절들을 포함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세계 또한 단지 사물들의 총합이  아닌.. (그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사실들의 총체라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구조'와 '세계의 구조'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만약 언어의 모든 미사여구를 제거해 명석하고 판명하게 만든다면 (애매하지 않고 명확하게.. 모호하지 않고 판명하게 만든다면..) 언어를 통해서 세계의 참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그림처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때문에 당연히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말하여질 수 없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니
이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당시 비트겐슈타인이 살았던 오스트리아에는 ‘비엔나 서클’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여기에는 당대의 저명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모였다.
이들이 기본적으로 받아들였던 입장은 ‘논리 실증주의’였다.
이들은 오직 과학만이 탐구할 가치가 있으며 형이상학이나 윤리학 종교 예술 등
이런 것들은 학문도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논리 실증 주의자들은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비과학적인 영역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라(입닥치라)’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열광을 했다. 같은 편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곧 비트겐슈타인이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비록 비과학적인 영역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크고, 더 넓고, 더 중요한 영역이라고 보았다.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순간 난센스/ 헛소리가 된다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은 초월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은 더 가치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정답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정답은 학교다닐 때 참고서에만 존재한다. 졸업하는 순간 우리는 정답없는 세상에 내던져진다.


각자가 자신이 가진 답만이 정답이라고 떠들어대면 댈수록  혼란만 더해질 뿐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철학의 임무란

'세계와 언어의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명료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다.'라고..

요즘처럼 모든 곳에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떠들어대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명석하고도 판명한 통찰이 더욱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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