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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Dec 05. 2020

'나는 다 알아' 증후군

나는 성인이 되어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다.

정확히는 군대에서 세례 받고 교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다. (강원도 화천군 보병 15사단.. 일명 승리 사단, 군대 마크가 노란색 보름달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하찮은 '초코파이 신앙'은 아니다. 비록 군대였지만 엄연히 성령 체험하고 거듭난 신앙인이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야 할지 섭리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긴 하지만 나의 군 생활 3년을 좌우하게 될 바로 위 선임 두 명이 독실한 크리스천들이었고 그중 한 명은 신학생이었다. 만 2년 4개월을 복무하고 제대하는 나를 반겨준 첫 민간인도 다름 아닌 부대를 먼저 제대했던 선임이었다.  그의 인도로 난생처음으로 군대 교회가 아닌 민간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그 교회에서 복학생의 신분으로 청년부 회장을 역임해 보기도 했다. (그렇다 당시 나는 잘 나가는 '교회 오빠'였던 것이다)


이렇듯 머리 커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와는 달리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는 모태신앙이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 신우회에서 만난 모태 신앙의 아내에게서 두 자녀를 낳았으니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또한 사별 후 재혼 한 아내도 모태신앙인이고 새로이 한 가족이 된 셋째, 막내도 모태신앙이니 나만 빼고 가족 모두는 모태신앙인들이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모태 신앙인의 특징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아 물론 만만한 나의 가족볼모로 한 주관적 판단이니 다른 모태 신앙인들은 시비 걸지 마시라..)




모태신앙의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성경에 너무 익숙하다는 것이다.  하기사 태어날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오죽하랴..


이들에게 아브라함이라든지 다윗, 모세 같은 성경 속 인물들은 옆집 삼촌보다 더 친근하다.

(웬만한 성경인물은 모두 이들의 이름으로 사용된다.  김 요한, 이 요셉, 박 모세 등..)


그런 반면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 중의 하나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성경 어디를 펴도 한 번쯤은 들어 본 이야기고 어떤 설교를 들어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감이 온다. 가끔 은혜(?)를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인생을 뒤바꿀만한 메시지는 아니다. 사실 모태신앙인에게는 인생을 뒤바꿀 만한 메시지는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이미 구원받았는데 뒤바뀌면 큰일이다.


모태신앙인의 특징은 한마디로 '난 다 알아'이다. 그래서 들을 대상으로 설교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아니.. 설교하기는 편한데 은혜를 끼치기는 참 어렵다)



나는 주일이면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예배한다. 처음에는 참 난감했었다.

한국말 서툰 미국 중학생 1명(막내), 조금 덜 서툰 여자 고등학생 1명(둘째), 모든 게 시니컬한 남자 대학생 1명(큰 애) 그리고 미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친 1.5세 아내.. 더구나 이들 모두는 목사를 아빠와 남편으로 둔 뼛속까지 모태 신앙인들.. 도대체 누구에게 핀트를 맞추어야 할지 헷갈렸다.  


고민 끝에 예배 시간에 함께 성경을 읽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일주일 동안 정해진 본문을 함께 읽고 주일 예배시간에 그동안 읽은 본문 말씀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함께 나누고 싶은 점이 있으면 서로 나누자고 제안한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었다. 토닥토닥)


그렇게 몇 달 동안 가정 예배를 인도해 본 결과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참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성경 말씀을 나누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대개 '그거 이미 알고 있는 거야'였다. 마치 오늘은 내가  성경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 어떤 설교를 할지 다 아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 마디로 성경에 너무나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 것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익숙할수록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들은, 특히 모태신앙인이나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그저 성경 속 이야기가 익숙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내용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익숙함이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방해할 때가 더 많은 것이다.


내가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이고,  가족들만의 소규모 예배를 통해서 그동안 경험해 볼 수 없었던 깊은 수준의 나눔과 소통을 해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가족은 신앙적인 면에서는 평균 이상이라고 자부할 만하다. 기본적으로 목사가 가장이고 아내는 학창 시절을 교회 청년부에서 보낸 후 목사와 결혼한 굳건한 신앙인이다. 자녀들 또한 태어날 때부터 교회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라나 지금껏 교회 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이런 골수 신앙인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이들이 신앙에 대해 무지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조금 달리 생각해서 목사 가정의 신앙이 이 정도 밖에는 안된다면 진짜 평균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야야 한다.  


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평균적인 신앙인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매주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설교 듣고 헌금하고 기도한다. 성찬에 참여하고 교제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왜 하는가?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모든 일이 그저 숨 쉬듯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생각해 보면 답이야 떠오를 테지만 그 답이란 것도 구원, 천국 등의 단어로 구성되는 수준이다.

무엇이 구원이고 천국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본다면 또다시 당황스러워질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모습들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예수님 당시에 직접 눈으로 기적을 확인하고 체험한 사람들의 신앙도 사실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왜'라는 질문에는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신약시대 예수님의 목회 대상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민족적 자긍심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태어날 때부터 신앙 교육을 받고 자라난 모태 신앙인들이었다. 그런 유대인 중에서도 진짜 유대인이라 하면 아마도 바리새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하도 바리새인들을 나쁘게 묘사하고 있으니 우리는 바리새인 하면 무슨 천하에 몹쓸 악당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당시의 체감지수로 따지면 바리새인은 당대의 청렴한 지식인이요 올곧은 신앙인의 모범이었다. 그들은 구약 성경에 정통해 있었으며 지식뿐만이 아니라 율법의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히 지키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신앙인들이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순교까지도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의 웬만한 크리스천은 그들에게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유독 바리새인들을 천하에 몹쓸 놈들 수준으로 그리고 있다. 예수님을 끝까지 반대하고 결국에는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이끈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왜 그토록 예수님을 반대했을까?


나는 그 이유가 그들의 교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넘치는 지식과 '난 다 알아' 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인정했다. 예를 들어 당시의 추앙받는 랍비들은 대부분 바리새인들이었는데 그들은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5권으로 이루어진 당시의 성경책)을 머릿속에 통째로 외우고 다녔다고 한다.


성경을 통째로 외우고 다니는 사람한테 누가 감히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고 들이대겠는가? 더욱이 그들은 청렴하기까지 해서 로마의 식민 정권과 결탁한 종교 귀족인 사두개인 제사장 그룹과는 달리 백성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아왔다.


이러한 인정은 자연히 신앙적 자만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 누구도 신앙에 대해서나 하나님에 관하여 자신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시는지 또 어떻게 해 드려야 만족하시는지 모두 다 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당사자인 하나님조차도 예외가 될 수 없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그게 아니라.. ' 했다가 결국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 칼빈이란 신학자가 저술한 <기독교강요>란 책이 있다. 책 제목만으로는 기독교란 종교를 마구 '강요'할 것 같은 압박감을 주는 책이지만 실제 내용은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를 상세히 설명하는 일종의 변증서이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에서 성경책만큼이나 권위를 지닌.. 그만큼 내용을 인정받는 책이다.


어마어마한 책 두께를 자랑하는 이 책의 주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저자인 칼빈이 서두에 간략하게 설명해 놓았듯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나에 대한 지식'.. 이 두 가지가 전부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참된 지식이란 이 두 가지가 전부이며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 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와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깨달음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이 두 가지에 모두 낙제점수받은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들의 하나님은 율법책 속의 하나님이었을 뿐 삶 가운데 생생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교만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잊고 사는 것이 바로 교만이다.


그런 면에서 바리새인들은 교만했고 동시에 무지했다.


결국 무지와 교만은 같은 말이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곧 '무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만은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는 '죄'의 본질인 것이다.




가족들과 몇 달 함께 예배하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깨달음을 얻었다.    

이전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면 우리 가족은 주일이면 온 하루를 교회에서 보냈다. 아침부터 온 가족이 교회에 나와서 아내는 초등부 교사로서 아이들은 주일학교로 나는 예배 준비로 분주했다.


그러나 정작 함께 말씀을 나누며 서로의 신앙과 은혜를 깊이 있게 나눈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요즘은 매주 주일 아침이면 가족들이 둘러 앉아 서로의 신앙에 대해서 함께 나눈다. 성경 본문을 읽고 궁금했던 점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질문하고 깨달은 바가 있으면 함께 나누는 것이다. 예배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매주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솔직하고 편안하게 나누다 보니 그동안은 그 누구도 들춰보지 않았던 신앙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하나둘씩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왜 믿는지부터 시작해서 기쁜 소식(복음)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무엇이 기쁜 것인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과연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너무나 많은 것들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한 고민을 해보지 못했던 사실들이 매주마다 드러났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 했단다. 뒤집어 말하면 '난 다 알아'하는 사람은 실상은 가장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잘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이지 않을까 한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면서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교만이 문제란 소리다.


그래서 신앙의 기본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절대자'를 신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절대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웃에게 베푸는 것이 곧 자신을 살찌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한다면 먼저 이웃부터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일 그를 신뢰한다면 (믿는다면) 그의 말을 믿을 것이고

진정 믿는다면 그 믿음에 따라 실천하게 될 것이다.


신앙은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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