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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Apr 19. 2021

에스라/느헤미야 서가 읽기 힘든 이유

이름이 너무 많아...

에스라/느헤미야 서는  차암 읽기 힘든 성경책 중의 하나다.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어도 읽을까 말까 고민되는 인터넷 시대에 단순한 이름의 나열은 정말 노답이다.


도대체 성경책은 왜 이리도 재미없게 쓰인 걸까? 나와 아무 상관 없는 명단이 왜 길게 기록되어 있는 걸까?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우리가 성경을 재미없어 하는 이유는 단지 내용의 지루함이나 이름의 나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BTS의 팬들이라면 BTS 일곱 명의 이름은 물론 그들의 가족, 친척, 사돈의 팔촌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 이다. 그 명단이 팬들에게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 속의 이름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성경 속 이름들이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이름들이 나에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들이 왜 삽입되어 있는지..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에게 귀환자들의 명단은 정말 중요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에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이었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처해진 삶의 환경은 낯선 이방 땅 가운데 포로 생활이었다. 에스라는 자신과 자신의 민족이 낯선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민족이 하나님의 명하신 바를 충실히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명하신 바는 바로 '올바른 예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가 파악되면 답은 쉬어진다.

현재의 비참한 상황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올바른 예배를 하지 못해서 처해진 상황이라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예배를 회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배가 행해질 성전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즉 성전 재건과 이를 통한 예배의 회복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성전이 재건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에스라서 초반부터 등장하는 그 지루했던 이름의 나열은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삶의 터전을 포기하고 귀환한 귀환자들의 명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한 명 한 명의 명단을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고 에스라/느헤미야를 펼쳐보게 되면 그 지루해 보이던 명단의 나열과 율법에 대한 강조가 어느 정도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하여 에스라/느헤미야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온통 성전 재건과 이를 통한 예배의 회복이다.

포로 생활로 지쳐 민족적 자긍심을 잃어가는 동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의 회복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올바로 예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배 의식(예전)의 문제만은 아니다.

예배는 단순히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것'에 강조를 둔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예배를 강조하시며

진정한 예배는 (제물을 드리는 제사가 아닌) 영과 진리 안에서 행하여지는 예배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구약의 선지자들 또한 강조해왔던 것임을 명백히 하신다.


결국 에스라를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토록 강조하고 추구했던 올바른 예배란...

'마음과 뜻을 바쳐 하나님을 구하는 것,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본질적 모습은 결국에는 이웃 사랑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신약의 예수님은 이웃 사랑을 그토록 강조하셨던 것이다.


행동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마음 가짐은 태도이다

태도가 바르지 않다면 행위 또한 바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음가짐, 즉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가 올바르지 못하다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행위 또한 올바를 수  없다.


거꾸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려야 할지 고민된다면

우선은 보이는 예배를 올바르게 하면 된다.


이 말은 예배를 치장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예식 의식을 장엄하고 화려하게 치르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예배의 본질에 유념하라는 소리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키우라는 소리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성전 재건을 위해 그토록 힘썼던 이유는..

예배의 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구원의 핵심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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