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엽 Jun 08. 2021

피식대학.. 한사랑 산악회

이게 뭐냐믄..

나는 50 대 목사다. 남자 나이 50 대면 ‘꼰대’ 일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가 목사라면 그야말로 꼰대의 전형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러한 내가 요즘 푹 빠져 있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다. 바로 ‘피식 대학'이다.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는 나는 주로 인터넷 뉴스를 통해 한국 물정을 파악한다. 매일매일 여러 분야의 뉴스를 따라잡기에 어느 정도 한국의 트렌드를 꿰차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생소한 기사 하나가 떴다. ‘한사랑 산악회’라는.. 지극히 평범한 한국의 50대 아저씨들의 산행기에 관한 기사였다. 아니 네이버가 뭐 그리 기사화할 것이 없어서 이제는 동네 아저씨들 등산 이야기를 다루었나 싶어 한번 읽어보게 되었다.


기사 내용은 ‘한사랑 산악회’라는 유튜브 영상을 소개하며 이 콘텐츠를 담고 있는 ‘피식 대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인기를 보도하는 기사였다. 나 또한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기에 주의 깊게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사를 읽고 난 그 순간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피식 대학’ 중독자가 되어 틈만 나면 그들의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었다.


사실 콘텐츠의 내용은 별게 없다. 처음 보게 되면 ‘이게 뭐야?’ 하고 (‘피식 대학'이라는 채널 명처럼) 피식 웃게 된다. 그러나 콘텐츠를 끝까지 보게 되면 계속해서 다음 회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런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피식대학의 인기 콘텐츠 중의 하나인 ‘한사랑 산악회'에는 한국의 전형적 50대 아저씨들 4명이 등장한다. 삼천리 자전거 대리점을 3개나 운영하는 산악회 회장 김영남 씨, 시시 탐탐 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영등포시장 상가번영회 부회장 이택조 씨, 배재고등하교 물리교사 정광용 씨, 그리고 미국 LA에 거주하다 한국에 건너와 LP 레코드 카페를 운영하는 배용남 씨가 그들이다.


뭐하나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꼰대 아저씨들의 산행기가 몇백 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뭘까?  과연 뭘까??


몇 가지 사실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거의 모든 구독자들이 댓글을 통해 인정하는 소위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한사랑 산악회의 평범한 내용은 ‘하이퍼 리얼리즘’의 극치이다. 왜냐하면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영상 속의 50대 아저씨들이 실제로는 20~30대 총각들의 연기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기가 얼마나 정교하냐면.. 그들의 옷차림, 말투는 물론이고 화면 구석구석을 채우는 거의 모든 동작과 애드립이 이 시대의 50 대를 너무나 똑같이 카피하고 있어서 실제로 이 영상을 자녀들이 그들의 50대 부모들에게 보여주면 “니들이 뭐하러 이런 아저씨들 브이로그를 보냐”고 핀잔받기 일수라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서는 (사실 이 부분이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이다) 이들이 유튜브 채널의 특성을 십분 잘 살려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유하며 그들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는 점이다. 이들 콘텐츠에는 늘 적게는 수 백에서 많게는 수 천 개의 댓글이 달린다. 댓글의 내용 또한 다른 댓글들과는 차별성을 띤다. 마치 콘텐츠 속 아저씨들이 자신들의 실제 지인들 인양 ‘여보게 반갑네’ 하며 인사를 건넨다거나 혹은 영상 속 세세한 부분까지 코멘트를 달고 칭찬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채널의 주된 시청자들이 20~30대의 젊은이들 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댓글을 통해 50대 꼰대 아저씨들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전까지 꼰대 취급하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냈던 '50 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해준 한사랑 산악회 콘텐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산에 올라가며 뽕짝을 크게 듣는다든지, 전화할 때 주변 신경 안 쓰고 고래고래 큰 소리로 떠든다든지 하며 눈살 찌푸리게 만들었던 그들을 이제는 새로운 시선으로.. 아버지 같은 느낌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콘텐츠의 콩트를 보며 웃다가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 피식대학과 4차 산업 혁명? >


사실 피식대학 채널 운영자는 일반 유튜버가 아니라 연기력을 갖춘 지상파 방송국의  공채 개그맨 출신이다. 개콘, 웃찾사 등의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되자 생계가 막막해진 그들이 어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유튜브 채널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실하고도 꾸준히 그리고 창의적으로 채널을 운영한 결과 오늘날처럼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의 몸값은 많이 올랐다. 유퀴즈나 라디오스타 등의 굵직한 지상파 프로그램 등에서도 그들을 섭외하기 바쁘다.  


내가 펜을 집어 든 것은 단순히 재밌는 유튜브 채널 하나를 소개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채널에 대한 20~30대 시청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통해 뭔가 이 시대의 변화상에 대한 통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속한 미국 PCA 노회에서 목사님들을 상대로 설교를 한 적이 있다. 설교 대상이 일반 성도가 아닌 목사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설교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코로나가 오히려 교회에 기회인 이유'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코로나가 오히려 기회라니! 웬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는 표정의 목사님들에게 내가 전한 메시지는 간단하다.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면 발전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이다. 교회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목사들에게 교회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교회사를 살펴보며 증거 한 것이다.

리고  피식 대학의 성공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러한 나의 생각에 실제적인 확신을 주었다.


첫째, 이들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에겐 방송사의 PD가 권력자였을 것이다. 아무리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그 실력을 대중에게 드러낼 수 있는 루트, 즉 대중과의 연결고리를 그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채 개그맨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엄격하다고 한다. 그래서 신인 개그맨들은 PD뿐만 아니라 윗 기수 선배들에게도 잘 보여야 하고 그들의 눈 밖에 나면 여간해서는 무대에 설 기회를 얻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유에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그맨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연예계를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피식 대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들도 방송국 소속이었을 때에는 전혀 알려지지 못했던 무명 개그맨들이었다)


그러나 방송국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아예 폐지되자 그나마 설 수 있는 무대를 잃게 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게 되었고 지금 그들은 구독자가 100만 명이 넘는 채널의 운영자이다. 이제 그들은 방송사 PD의 눈치를 살필 필요 없이 자신들의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구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주 달리는 댓글 중에는 방송사 피디들이 얼마나 사람 보는 눈이 없었으면 이런 인재들을 그동안 썩혔냐고 힐난하는 내용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런 댓글에 대해서 이들이 (겸손하게.. 그러나 통찰력있게)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 중에 남긴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자신들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 스타일이 이전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포맷에는 맞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는 유튜브 채널의 특성을 통해 자신들만의 색깔이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들 스타일의 특징은  디테일한 연기와 대사에 있다. 실제로 이들의 콘텐츠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화면의 구석구석에서도 깨알같이 연기하고 정교하게 애드립하는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데 사실 이런 스타일은 특성상 한 번 방영하고나면 끝나버리는 이전의 지상파 프로그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성이다.


그러나 유튜브의 시청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마음에 맞은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소비한다. 그리고 한 번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발견하게 되면 여러 번 반복 시청하며 화면의 구석구석까지 살펴보고 댓글을 통해 피드백을 남긴다. 피식 대학의 운영자들은 그들과 소통한다.  한사랑 산악회의 이택조 씨 역을 맡고 있는 개그맨 이창호 씨는 인터뷰 중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하였다.


“개그맨이 처음 되었을 땐 유재석 선배님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꿈이 바뀌었어요.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나만의 사생활을 빼앗기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아요. 그저 나만의 연기를 알아봐 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만족해요. 예전에 개콘에서 단역으로 연기할 때는 큰 동작과 대사를 해야만 겨우 사람들이 나에게 주목했었는데 유튜브에서는 나의 소소한 표정 변화라든가 스쳐 지나가는 애드립까지도 알아봐 주고 칭찬해주니 연기할 맛이 나요.”


그의 말대로 실제로 한사랑 산악회의 댓글에는 초 단위로 방송을 시청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지켜보고 칭찬해주는 시청자들이 댓글이 넘쳐난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이다. 환경과 상황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소위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다. 이 혁명의 키워드는 참여와 공감과 공유이다. 이 변화를 감지하고 동승하면 달콤한 열매를 맛보는 것이고 그렇지 못 하면 도태하게된다. 사실 이들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들이 절치부심하며 산속에라도 들어가 연기 수련을 하여 업그레이드 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이들을 둘러싼 주위 환경이 변했을 뿐이며 시대가 바뀌었을 뿐이다.


이들은 다만 바뀐 환경을 자연스럽게 맞아들이고 그저 올라탔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달콤한 열매를 지금 맛보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저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회일 뿐이다. 다만 그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좋은 것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쓰디쓴 맛을 경험하게 될 뿐이다.


내가 목사들에게 전한 메시지의 요점도 바로 이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시대적, 상황적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교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교회사적으로 살펴보고 증거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가 빈 말이 아니었음을 피식 대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의 성공을 통해서 재차 확인했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씨 뿌리는자 비유는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