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이게 뭔 개소리야!

by 이동엽

존재란 무엇일까?


'존재'라는 말이 철학사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게 된 것은 기원전 약 500년 전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였다

그전의 자연 철학자들에게까지만 해도 존재란 그저 당연한 사실이었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인간의 사유가 깊어지게 되면 반드시 도달하게 되는 주제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나는 누구인가?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존재'에 관한 질문을 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존재에 대한 깊은 사고를 한 대표적인 철학자로서는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은 생각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라고 생각한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은

만물은 유전한다.. 라든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변화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당연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아리송하게 들리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만물은 '변화한다'와' 변화하지 않는다'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는 이 둘의 생각은

어찌 보면 그 이면에 ‘만물은 하나다’라는 커다란 전제에 동의하는

동일한 주장일 수 도 있다


네 눈이 잘못된 거야!


이들이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 소크라테스는 사춘기 청소년쯤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자라나면서 이들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서

17세기 근대까지 서구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것을 생각해 볼 때 그에게 영향을 끼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선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은 한마디로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이다

하나마나한 당연한 소리같이 들리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말이 아닌 게

파르메니데스는 이 논리로 시작해서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 가 말한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말의 뜻은

오로지 존재만이 가능하고 비존재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없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무'를 인정하지 않겠다!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내가 앞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고 생각해 보자

나의 위치는 분명히 변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위치가 변하려면 앞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의하면 없는 것은 없으니까 앞에 빈 공간은 없다

그러므로 나의 위치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 그럼 내가 이렇게 분명히 움직인 것은 뭐야?"라고 질문을 하면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한다


"그건 감각에 의해 잘못 보이는 거야. 감각에 의한 정보는 믿을 수 없어.

진짜 실상을 바로 보려면 이성의 눈으로 꿰뚫어 봐야 하고

이성의 눈으로 본다면 하나도 변한 것은 없어."


정말 어이없는 답변으로 보일 수 있다

거의 궤변에 가까운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터무니없이 보일 수 있는 생각이

서양철학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감각을 불신하고 이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라는 파르메니데스의 이러한 생각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영향을 미쳤으며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향을 끼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지금까지도 세상의 여러 학문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서양철학의 근간을 플라톤이라고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렇게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이 심어져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또한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있는 것은 있다의 '있는 것'을

'원자는 있다'라고 해석하고


없는 것은 없다의 '없다'를

'빈 공간은 있다'라고 해석하여


모든 물질을 원자들의 움직임,

원자들의 이합집산으로 본 것이다

이는 오늘날 현대 과학의 이론과도 일치하는 생각이다


자칫 황당하고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는 생각 하나가

서양 철학 전반은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현대의 문명을 만들어 낸 토대라고 생각하면


파르메니데스의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황당한 말은

전혀 황당한 말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말 함부로 판단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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