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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Dec 29. 2021

싱어게인 53호

노래가 끝나자 심사위원들의 표정에 난감함이 역력했다

53호 가수는 자신을 '말하는 가수'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이상은의 '언젠가는' 을 

정말  말하듯이 노래했다


노래가 끝나자 심사위원들의 표정에 난감함이 역력했다


'이게 뭐지?' 


노래가 끝이 났는데도 뭔가 진한 여운이 남는 듯 

한동안 멘트를 잇지 못했다

어느 심사위원은 '노래 한 곡으로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무대' 였다고 극찬했다

결국 53호 가수는 6 어게인을 받아 심사를 통과했다


나 또한 '어 이게 뭐지?' 하며 유튜브 클립을 다시 한번 더 재생하게 되었다


박자와 음정을 무시하는 듯한.. 

술 취한 아저씨가 구석에 널브러져 혼자 주정하는 듯한..

무대에 처음 선 사람이 자신감없이 쭈삣거리는 듯한..

그럼에도 그가 내뱉는 가사 하나하나가 귀를 꿰뚫고 뇌리에 박히는 듯한..


무언가 한마디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묘하고 진한 여운이 짙게 남는 무대였다


노래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


얼마 후

포털 뉴스에 53호에 대한 기사가 떴다

특별한 인상이 남았던 터라

자연스레 클릭하게 되었다


당연히 호평 위주의 기사 일 줄 알았는데 기사 내용은 의외였다

53호를 통과시킨 심사위원들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도무지 음정 박자도 제대로 맞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무대에 세울 수 있는 것인지.. 등의 

부정적 반응을 다룬 기사였다


그래서 다시 유튜브 클립을 찾아봤다


기사의 내용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음정이 원곡과 틀린 부분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곡의 노래가 주는 감동은 여전했다


잠시 혼돈이 찾아왔다




2000년 전 예수의 가르침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혼돈으로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해본다 (설마 53호와 예수를??)


나는 목사다

직업병인지 모르겠지만 삶 가운데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서 

성경적 의미를 헤아려 본다


일부러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신학교 때 기계처럼 머릿속에 쑤셔 박아 놓은 성경 구절들이   

일상 속에서 무장해제되어 자연스럽게 

나의 모든 사고 속에 녹아드는 것이다


몇 해전부터 경연 프로그램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느라 감추어져 있던 민족의 정서가 요즘 와서 발흥되는 것 같다


어느 프로그램을 막론하고 가창력이 뛰어난 참가자는 주목을 받는다

높은 음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폭발적인 성량을  뿜어내는 가수들에게 

방청객은 기립박수를,  시청자는 탄성을 내지른다 


반면 뛰어난 가창력을 보여주지 못한 참가자들은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덧 우리의 뇌리 속에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 좋은 가수라는 등식이 

박혀있는 듯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가창력이 노래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사물의 정확한 묘사만이 그림의 전부가 아니 듯이

정확한 음정과 박자, 가창력 만이 음악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물론 중요한 기본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노래 경연 대회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 도처에는 

정해진 평가 기준이 있고 정답이 있다


학생은 이러이러해야 하고

직장은 이러이러해야 하고

이 나이쯤이면 결혼을 해야 하고

아파트는 몇 평 정도 되어야 하고


음악은 이러이러해야 하고

미술은 이러이러해야 하고


교회는 이러이러해야 하고

예배는 이러이러해야 하고..     


끝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정해져 있는 답을 찾아내는데 익숙하다 (아마도 수능 때문인 것 같다 ㅠㅠ)


(그렇게 길들여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우리에게 정답을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기준에 어긋나면 정답이 아니다


정답이 아니면 틀린 것이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는 

2000 년 전 유대 땅에 살았던 예수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여러 이적을 일으키며 당시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실존 인물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그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적어도 시대적 기준이나 정답을 따라 산 사람으로 비치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안식일 지키는 것을 정답으로 여기며 살아갈 때

예수는 손 마른 자를 고쳐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세리와 창기를 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을 때

예수는 세리와 창기의 친구로서 지냈다


모든 사람들이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들었을 때

예수는 그녀를 앞장서 보호하였다


복음서는 온통

예수가 당시의 기준과 정답을 거부하는 사건들로 가득하다



53호를 보는 우리의 눈과 귀는 

정답과 기준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면 틀린 것 같다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정답에 익숙한 우리는

정답을 찾아야만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다름'이 주는 풍요로움과 화려함, 아름다움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경연무대에서 어색할 정도의 '다름'을 보여주었던 

53호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보았다


'오열'이란 이름의 정식 가수이자 현직 고등학교 음악교사란다

적어도 경연 무대에서 보여준 '다름'의 모습은 부족한 실력이라기보다는

의도된 연출이라는 합리적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른 공연 영상이 있어서 클릭해 보았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무대인 네이버의 온스테이지에도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때론, 나는, 그래서 '

라는 곡이 참 좋았다

온 스테이지 2.0 때론, 나는, 그래서


국악인 이희문 씨와 콜라보한 '강강'이라는 곡에서는 소위 말하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열 & 오방신 (이희문) 강강



정답과 기준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 싱어게인 이라는 프로가 참 고맙다

앞으로 시청자들의 악플에 

천성적으로 자본주의 기업인 방송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지만.. 암튼


목사로서 신앙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신앙의 본질은 무엇일까?

예수를 믿는다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유튜브로 예능 프로그램 보면서 별생각을 다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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