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 누가 이길까?
2022년 올해는 임인년 호랑이 띠란다
나는 원숭이 띠고 아내는 용 띠다
둘 다 호랑이 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원숭이띠라 그런지 바나나를 잘 먹는다
그렇다고 바나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바나나가 젤 먹기 편하다
한마디로 게으르다
아내는 용띠라 그런지 고기를 좋아한다
뭔가 씹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자주 씹는다
원숭이와 용은 닮은 점도, 공통점도 하나 없는
그야말로 전혀 상관없는 존재들인 것 같다
요즘 들어 유튜브 영상을 찍으며 둘이 부딪힐 때가 종종 생긴다
(우리 부부는 '허당 그레이스씨'라는 채널을 운영중이다)
아내는 한 장면을 찍더라도 주변을 깨끗이 치우고
될 수 있으면 정돈된 모습만을 보여주려는 반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솔직히 치우는 것이 귀찮다..)
썸네일을 만들 때도 우리는 의견이 다르다
아내는 정상적인 섬네일을 만들고 싶어 한다
사진도 이왕이면 잘 나온 사진, 예쁘게 나온 사진을 골라서
썸네일로 쓰고 싶어 한다
반면에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진이나 망가진 장면 등 반전 있는 모습을 좋아한다
(음 예를 들면 예쁘게 차려입은 아내가 코를 후비는 장면이라든지..)
집안일을 할 때도 우리 둘은 늘 부딪힌다
설거지를 하더라도 아내는 반드시 두 번씩 헹구고
씻은 그릇은 작은 그릇이 밑으로 가게 해서 가지런히
정돈해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나는 환경 생각해서(?) 웬만한 것은 세제를 안 쓴다
설거지 한 그릇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일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한다
청소를 해도 아내는 먼지 하나 없는 구석을 쓸고 닦으며 피곤해 하지만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좀 더 먼지가 쌓여야 청소할 맛이 나지 않을까?)
나는 철학, 과학 등 잡다한 지식에 관심이 많은 반면
아내에게 책은 그저 낮잠용 베개에 불과하고
나는 조크를 좋아 하지만
아내의 삶이 늘 다큐다
사람들은 원숭이와 용과 싸우면 당연히 용이 이길 줄로 알지만
결과는 늘 그 반대다
말다툼을 하다 보면
아내는 늘 나의 말에 휘둘리게 된다
원숭이는 용의 머리에 올라타는 재주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원숭이와 용은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용의 머리 위에 올라 탄 원숭이는 방향을 알려주고
용은 그 방향으로 힘차게 날아가면 되니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가 돼라'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나 부부관계에서 부부는 '일심동체' 라며
모든 일에 서로 양보하고 참으며
서로를 배려하며 살라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인데
이런 본능을 죽이고 어떻게 늘 양보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번 보는 남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늘 얼굴 보고 사는 사람과는
한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하나가 되라는 말보다는
남을 나처럼 여기라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사지 멀쩡한 두 개인이 하나가 되면 보기 흉한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부부가 한 몸을 이루라는 말은
억울하고 힘들어도
서로 참고 양보해서 한 몸처럼 살라는 말보다는
원래 한 몸임을 깨닫고
남을 나처럼 여기라는 말에 더 가까울 것이다
마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재와 자매가
서로 다투고 싸우더라도
서로 한 가족임을 알기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까르르 웃고 떠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언제나 내 몸처럼 여기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