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나를 잃어버렸다

추석 선물은 올해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by 완벽한 엄마

딱 3년 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도 아닌, 매해 받는 그저 그런 추석 선물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특별했다.

3년 만에 추석 명절 선물을 받고 뭉클해졌다.

나도 이제, 무언가를 하고 있구나.


그저 참치캔 6개가 들어있는 작은 선물이지만 나에게는 올해 가장 큰 선물이었다






나는 결혼 후 나를 잃어버렸다.

결혼 준비할 때는 '신부님'이라는 호칭에 손이 오그라들고, 출산 후에는 '어머님'이라는 말에 기겁을 했다.

'나'라는 사람은 대체 언제 '나'일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가끔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기를 낳았으면 아기 엄마로 살아가는 게 지극히 정상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를 찾고 있는 걸까.


결혼 한지 얼마 안 되어 아기가 생겼다. 지인들에게 "저 임신했어요."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그건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솔직히 슬픔의 눈물이었다.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출산을 이유로 회사에서 잘렸고,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남편이 혹시라도 피해를 입을까 걱정되어 이의제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기가 나오면 이제 나는 아기 엄마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이 나를 기쁨이 아닌 슬픔으로 내몰았다. 뭔가 억울했다.

이제는 내 명의가 아닌 남편 명의의 카드와 통장을 써야 했는데, 그게 꼭 '나'라는 사람을 세상 밖으로 몰아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마지막 근무는 2017년 9월 30일이었다.

회사를 나오면서 시원섭섭한 감정이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입덧이 심해 매일 출근하자마자 회사 화장실 변기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하고, 밥도 잘 챙겨 먹지 못했던 날들이 생각났다.

12월에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집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가만히 앉아 쉬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내 삶에서 처음 가져본 온전한 '쉼'이었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읽고 썼다. 앞으로 뭘 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없었다.

출산 전에 하던 일을 하고 싶어도 회사들이 날 써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뭔가를 계속 공부했다.

그게 나에게는 작은 희망의 불씨였다. 꺼뜨리고 싶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더 우선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똑똑하게 잘 자라줬고, 어느새 4살이 되었다.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 집에서 쉬면 어떻겠냐며 남편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말렸지만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일'이 아니라 '나'를 찾고 싶은 거였다.

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은 거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꿈을 이뤘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 죽을 줄만 알았던 내 인생에, 자리가 생겼다.

그렇게 딱 3년 만인 2020년 9월 15일에, 나는 다시 '출근'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


KakaoTalk_20201006_110355337.jpg 작은 공간이지만 여긴 나만의 영역이다. 내가 일하는 나의 공간.



3년 만에 회사에서 주는 추석 명절 선물이라는 것을 받았다.

사람들은 "올해도 이거네." 하며 가볍게 넘겼지만, 나는 감격 그 자체였다.

가만히 앉아 선물을 바라보니 내 안에 뭔가 모를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다. 울컥했다.

나도 이제, 진짜 일을 하고 있구나.

내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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