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유(餘裕)를 사러
카페에 간다

내가 가진 첫 여유는 오히려 출근을 시작한 다음이었다.

by 완벽한 엄마
아이를 출산한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아이를 돌봐 줄 친정엄마가 없었고, 시어머니는 병상에 누워계신 시아버지를 돌보시느라 바빴다.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의지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남편이 없는 낮 시간 동안 아기를 혼자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다.


불안감은 출산 후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부터였다.


내가 이렇게 작은 생명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겁부터 났다.

아이는 2.72kg의 아주 작은 몸으로 태어났다.

출산 도중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 아이는 잘 견뎌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스스로 어려움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강인함이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아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강했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을 힘들어하고 불안해하며 살았다. 너무 보고 들은 것만 많았던 탓이다.

아이가 의사표현의 방식으로 울음을 택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는데도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내 안에 바늘들이 고슴도치처럼 예민하게 솟아났다.

아이가 왜 이렇게까지 우는 걸까?라는 원초적인 고민은 팽개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바빴다.

나는 우는 아이가 싫었고, 미웠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숨은 잘 쉬는지, 오줌은 잘 싸는지, 잘 놀고 있는지 계속 살피게 됐다.


나는 아이 엄마이기를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하지 못하는 상태로 1년을 보냈다.


남편은 매일 퇴근 후에 집에 오면 나의 기분부터 살폈다.

그리고 아이에게로 가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었다. 왜 울었는지도 다정히 묻곤 했다.

아이는 아빠를 보고 웃었고 아빠 품에서 곤히 잠들었다.


예민한 내 기질을 닮지는 않을까,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벌써 눈치챈 것은 아닐까, 걱정됐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 감정이 더 중요했다.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만 기다렸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난 후에 나는 방에 틀어박혀 하얀 벽을 보며 몇 시간이고 앉아있고는 했다.




나중에서야 이것이 '산후우울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사실을 알고 많이 울었다. 내 주변에는 지금도 결혼한 친구가 많지 않다. 아이가 있는 집은 더 드물다.

내 고민과 아픔을 나눌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공감해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빨리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도 신기한 것은 그 힘들었던 시기에도
나는 아이에게 젖만큼은 잘 물렸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배고파 우는 소리는 기가 막히게 알아들었고, 젖을 물려주면 행복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힘차게 빠는 아이를 보며 나도 잠시 행복에 젖곤 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늘 아이에게 최선을 다 했다.

남들보다 더 길게 물렸고, 아이는 24개월까지 모유를 붙들고 살았다.

아이가 이유식을 거치는 도중에도 젖은 꼭 물어야 했다.

다들 너무 오래 먹이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와 나의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의 내 목표를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24개월이 되어 생일이 지난 어느 날, 아이에게 이제 젖을 그만 먹자고 했고 아이는 순순히 동의했다.

지금 우리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모두 사랑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주변인들에게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알고 자신의 의견도 잘 표현할 줄 아는 귀여운 33개월로 자라났다.



KakaoTalk_20201007_101514124.jpg 어제저녁, 아이가 혼자 큐빅 스티커를 손톱에 붙이고 매니큐어라며 보여주었다. 벌써 꾸미는 것에 관심이 생겼구나!



그동안 나는 주변의 아무 도움도 없이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했었다.

내 마음이 조금 회복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늘 곁에 함께 있어주던 동생 부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응원해주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힘이 들 땐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걸 알고 나면 힘이 생긴다. 여유도 생긴다. 나도 동생 부부 덕에 우울증을 빨리 떨칠 수 있었다.



KakaoTalk_20201007_101514124_02.jpg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할 수 있는 여유.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아이가 33개월인 지금, 나는 일을 시작한 지 1개월 차다.

일을 하면 아무래도 시간이 빨리 가고 정신이 없다. 특히 취업 초반에는 더욱 그렇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느라 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런데 잠시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그 순간에,

지금 나는 엄마로서가 아닌 '나'로서의 첫 여유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속의 나는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그냥 '나'일 뿐이다.


내가 가진 첫 여유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던 그때가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엄청난 감정의 기복과 고통을 겪고 엄마들은 드디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다.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엄마들은 많은 집안일과 싸운다.



그렇기에 엄마들은 커피를 마시자고 카페에 가는 게 아니다.

엄마들은 여유(餘裕), 느긋하고 차분한 마음을 사러 카페에 간다.

그 비싼 커피에 돈을 써가면서도 엄마들에게는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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