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대낮에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만능이어야 한다.
회사를 다시 다니기 시작한 다음부터 늘 되뇌던 말이다.
살림도 잘하고 싶고, 업무도 잘하고 싶다.
그러려면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어야 한다.
멘털 관리는 피지컬로 하는 거라고 했다.
나에게는 24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루가 너무 짧았고 잠을 안 잘 수 있다면 좋겠다고,
아니 2시간만 자도 거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캡슐 하나 딱 먹고 나면 배가 안 고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업무를 더 많이 배우고 싶었고 빨리 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오는 그 순간 나는 엄마여야 한다.
그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한 이유였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정신없이 출근해 열심히 일을 하고 나면 금방 퇴근시간.
팀장님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대낮에 혼자 퇴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아, 나는 출근 첫날부터 30분씩 더 일하곤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6시간 일한다고 할걸,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나름의 고충이 또 생기겠지.
5시간이든 6시간이든 다른 사람들에겐 똑같은 대낮이고,
나는 눈치 보느라 지금처럼 30분을 더 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퇴근 후에 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 설레고 행복해서
일을 하는 대신 남편과 약속했던 '일과 살림의 경계'를 잘 지키지 못했다.
집에서도 하루 종일 업무 생각만 했고, 뭘 하다가도 생각나면 달려가 노트북을 켰다.
그런 생활을 2주 정도 하다 보니 그제야 혼자 육아에 허덕이는 남편이 보였다.
너무 미안해졌다. 내가 또, 나만 생각했구나.
남편에게 미안하다며 내 진심을 건넸다.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지금은 마냥 좋으니까 그런 거잖아.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어.
그 얘길 듣고 더 미안해져서 나는 그 날부터 퇴근 후면 완벽히 엄마로서 충실했다.
전보다 더 일찍 출근했고 퇴근할 때 다른 사람의 눈치는 보지 않기로 했다.
사실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고, 퇴근할 때면 팀장님은 수고했다면서, 조심히 가라고 얘기해줬다.
대표님 역시 나의 출퇴근 시간을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다. 그리고 입사 때부터 얘기했었다.
네가 누구보다 열심히 할 거라는 걸 믿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터치하지 않을 거야.
너는 분명히 잘 해낼 거야. 열심히 할 거고. 그걸 내가 알고 있으니까 된 거야.
회사와 남편에게서 받은 눈치를(사실 아무도 주지 않았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살림하다가도 뭔가 해야 할 일이나 메모할 것들이 떠오르면
바로 책상으로 달려가 메모를 하고 노트북을 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집에서만큼은 아내이자 엄마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업무와 살림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 타는 것이 워킹맘의 현실인 것 같다.
경계를 허물지 않도록 그 중심을 잘 잡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 속에서 나도 남편도 아이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고
함께 성장해가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행복하다.
나는 지금의 내 삶이 좋다.
업무와 살림 모두 내게 행복과 스트레스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에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돈 벌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업무에 뛰어든다면 오래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일을 함으로써 남편도 아이도 나를 자랑스러워하기를 바란다.
나의 꿈은 단지 그것뿐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삶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