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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단추

나의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인가, '아이'의 시간인가.

by 완벽한 엄마

퇴근길에 아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따라 말이 없는 아이에게 오늘은 뭘 하고 놀았는지, 어땠는지 무성의하게 물었다.

어디선가 '아이에게 어린이집에서 어땠는지 질문하지 마세요. 아이가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문했었다.

다시는 그렇게 물어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자마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나.


34개월인 딸은 언제나 바로 알아차린다.

엄마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지, 아니면 그냥 매일 하는 의식처럼 기계적으로 묻는지.

차창 밖을 바라보던 아이가 룸미러 너머로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재밌었어. 친구들이랑 놀고, 선생님이랑도 놀고. 근데 왜 자꾸 물어봐?"

엄마가 계속 물어보냐고 묻자 매일 물어본다고 답하는 딸.

그러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말이 없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삶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다고.

아이를 낳았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

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우리의 삶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건 훗날 아이를 독립시키고 난 이후의 일이라고,

지금은 그저 아이에게 집중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같은 꿈을 꾸면서도 가는 길은 달랐다.


우리는 함께 하고 있지만 함께 하지 않는, 동상이몽의 삶을 살았다.



회사에 들어가면서 나는 내 시간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전업주부였을 때도 나는 책을 읽는 시간, 곧 나만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시작하니까 일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처음 입사할 때부터 대표님은 누차 말씀하셨다.

"지금은 회사 적응보다 가족들이 적응하는 게 먼저야. 가족들이 먼저 너의 삶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해."

엄마가 회사원인 삶을 가족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퇴근하고 나면 나는 언제나처럼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가정주부일 때와 100% 같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의 삶의 변화로 인해 가족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그 말에 적극 동의했다.


그렇게 동의해놓고서.

나는 입사 첫날부터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콘텐츠들을 찾아 헤맸다.

내가 하는 일은 우선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나도 생전 처음 해 보는 일들이니 자꾸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만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단 한순간뿐인,
지나가면 사라져 버릴 순간들을 자꾸 놓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요즘 들어 어리광이 많아지고 질투도 더 심해졌다고 했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신경을 많이 못 써줬는데, 혹시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됐다.

선생님도 나도 웃으며 "아이가 점점 성장해가는 과정인 거겠죠."라고 얘기했지만

내 마음 한 켠에는 자꾸만 뭔지 모를 걱정과 불안함이 앞섰다.

어린이집에서 인생 첫 공연 보다가 무서워서 엉엉ㅋㅋㅋ


아이가 잘 시간이 되어 아빠와 씻고 방에 들어갔다. 남편은 퇴근 후에 늘 아이를 도맡아 챙겼다.

방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나를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가 보니 아이가 혼자 수면조끼의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단추를 채우고 있다니. 저렇게 잘하는 아이에게 그동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런 순간이 오면 나는 정말 무심한 엄마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동안 알면서도 모르는 체했다.
아이가 이제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는 사실을.



아이는 놀라워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뿌듯한 미소로 하나씩 단추를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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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아침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가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내가 씻기고 내가 입히고 내가 먹였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의 모든 것을 제한했다.

내가 일을 다니지 않았을 때도 그랬으니 하물며 일을 시작한 후에는 어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정말 고맙게도 수동적으로 자라지 않았다.

그럴수록 아이는 "내가! 내가!" 자기가 하겠다고 외쳤다. 그럴 때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하지만 그게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서였을까.

잊을 때마다 아이는 스스로 하겠다는 뜻을 드러냈고 우리는 최대한 존중하려 애썼다.

이제 아이는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다. 젓가락질도, 옷을 바로 입고 벗는 것도,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것도, 이를 닦는 것도, 양말과 신발을 신는 것도, 자신이 본 책과 장난감을 정리하는 것도.


나는 내 시간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시간을 바라보지 못했다.

나의 삶에 집중하는 사이 아이는 훌쩍 커버렸다. 아직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더 늦기 전에 점점 자라고 있는 아이의 시간 속에 함께 해야겠다.





나의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삶, 내 시간이 무엇일까. 그건 정말 온전히 '나' 혼자만 존재하는 순간일까.

남편이 이야기해 왔던 것처럼 내 삶과 시간에는 '우리 세 사람' 모두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이를 낳기 전부터, 신혼 때부터 했던 고민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한창 연애 중인 친구가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사람은 참 이상한 존재야.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고.

평생을 혼자 살자니 진짜 걱정되는데

평생을 누군가와 같이 살자니 그건 더 무서워.

그래서 내가 아직도 결혼을 못 하고 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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