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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은 밥을 언제 하지?

업무도 내 일, 저녁 준비도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by 완벽한 엄마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 단 5시간만 일하기로 했을 때,

그 정도 시간이라면 내가 집안일까지 하기에 별로 무리가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일 5시간 근무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다만 어느 정도는 일관성을 보여야 했기에 9시 반에서 10시쯤 출근을 하곤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에 오니 완전 의욕 상실. 업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더니 집에 오면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밥은 먹고 먹여야 하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움직이려고 하면

그때부터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괜히 남편과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곤 했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나는 밑반찬이나 김치를 담가줄 어머니가 없다.

누구나 행복한 척한다는 인스타그램에 지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다거나,

친정엄마가 밥을 해줬다거나 이런 내용만 보면 쓸데없이 질투가 나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언제나 그런 친구들이 부러웠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육아를 하거나 반찬을 받는 그런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


나처럼 똑같이 일을 하거나 집에서 육아와 살림만 하는데도 엄마들이 매번 반찬을 날라다 주고

김치를 담가서 나눠줬다는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 참으로 괴로웠다.

물론 그 어머니들의 희생이 없다면 내 주변 사람들도 힘들었겠지만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을 하러 나가면 나갈수록 집안은 지저분해졌고,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나는 그 상황을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저분한 것들은 내가 외면하면 어느 정도는 참을만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식사였다. 저녁을 먹기는 해야겠는데 너무 힘들어서 식사 준비를 하기가 싫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아이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폭발해버렸고, 그날 우리 가족은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해.

하지만 업무도 내 일, 저녁 준비도 내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이 나섰다.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내가 음식을 배워야겠어.


진짜 거창한 거나 대단한 건 못 하더라도 음식 3-4개는 배워볼게.

평일 중에 하루는 내가 책임질 테니 또 하루는 당신이 책임져.


그리고 나머지는 밀키트나 반찬을 사서 먹기로 했다.

그렇게 얘기만 했을 뿐인데도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이게 문제였구나.

그래서 요즘 밀키트가 유행하는 거구나.

우리 남편이 새삼 고마웠고 미안했고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내 행동 보면서 힘들었을 거고 이해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그동안 다 이해해줬다는 자체로 대단했다.



나는 아이가 어리니까 먹이는 걸 제대로 신경 쓰고 싶었다.

집에 와서도 심심하지 않게 잘 놀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일하면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못했다.


대체, 워킹맘은 밥을 언제 하지?


다들 나처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우리처럼 자주 사 먹게 될까? 아니면 매번 냉장고 파먹기를 할까?

매일같이 오늘은 뭘 먹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언제쯤이면 내가 회사일에 적응을 할 수 있게 될까?

완벽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할 수는 있는 걸까?

자꾸 의문만 쌓여간다. 누군가와 이 힘듦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은 순간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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