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담다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만추 May 12. 2021

[이 시국에 장막 희곡] PLAYLIST

노만추의 Write with me (5)



21.05.04~21.05.10 재생목록    

     

얼마나 좋을까 
이수영 

세 개의 막으로 된 희곡이었으면 좋겠다. 1막은 A의 이야기다. 2막은 B의 이야기, 그리고 3막은 C의 이야기. 마지막 3막은 A와 B의 이야기여도 괜찮겠다. 그렇게 되면,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처럼 C는 이름만 거론될 뿐 등장하지 않아도 재밌겠다.


1막과 2막이 교차되고(a), 2막과 3막이 교차되는 장면(b)이 있으면 좋겠다. 1막에서는 A의 중심으로 장면이 진행되었다면, 2막에서는 B의 중심으로 장면이 진행되면 어떨까. 같은 식으로 2막에서 B의 중심으로 펼쳐졌던 장면이 3막에선 C를 중심으로 펼쳐지면 좋겠다. 뒷 장면이 앞 장면을 배신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라는 주제를 이야기 구조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 개의 이야기가 비슷한 시간대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시간대에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그러니까, 1막(A’)과 2막(B’) 사이에 긴 시간이 흐르고 또 2막(B’)과 3막(C’) 사이에 긴 시간이 흐른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인물과 인물 사이에 오해는 깊어지고 닿고자 하는 욕망도 강해지지 않을까.

 

예전에 봤던 연극 <와이프>처럼, 최근 읽고 있는 소설 <눈 속의 에튀드>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세 개의 이야기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도 재미있겠다. 대를 거치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화(a’, b’)가 있는데, 그 동화가 1막과 2막 그리고 3막 사이에 삽입되면 어떨까. 입에서 입으로 동화를 실어 나를 때마다, 동화의 내용이 점점 변해가면 좋겠다. 


상상속의 너
노이즈

희곡에 등장하게 될 너를 그려본다. 아직 이름조차 짓지 못한 너희의 모습을 가늠해본다.


어쩌면 너는 모국어를 점점 잃어버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단어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너는 왜 외국어를 익히게 됐을까? 왜 낯선 언어를 써야 하는 타지로 오게 됐을까? 그곳에서의 삶은 어땠을까?


어쩌면, 누군가가 남기고 간 편지를 발견하며 너의 이야기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난생처음 보는 문자로 쓰인 편지를 해독하려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우연히 알게 된 노래를 앵무새처럼 흥얼거리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대체 너는 어떻게 그 편지를 해독할까? 네가 가려는 여행지는 어떤 곳일까?


어쩌면 너는,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는 음식을 매일매일 만드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일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과 계속해서 전통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싸우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왜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게 된 걸까? 왜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걸까? 그게 너에게 어떤 의미길래 그토록 소중한 걸까?


네 생각
존박

노래를 들으며 이야기를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아직은 흐릿한 인물들이, 노래를 타고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주기를. 노래를 듣는 동안은 내가 그들이 될 수 있기를. 


다음은 내가 이야기와 인물들을 상상하며 들은 노래들이다.


Aubrey-조안나 왕

꽃밫-이준형

Can’t Help Falling In Love-UB40      


遥か(Haruka)
GReeeeN

너무 길고 큰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평소에 쓰던 글과 너무 멀리 떨어진 글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새로운 건 좋지만 나다움이 사라지는 건 싫다. 도전은 좋지만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화려한 장신구를 고르는 건 싫다.


예전에는 노래를 들으면 인물들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대사를 쓰고 싶어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요즘에는 말이 아닌 문장이 떠오른다. 며칠 전엔 대사를 쓰는 게 아득하게 느껴져, 희곡을 수정하다가 그만뒀다. 연극이 싫어지면 어쩌지. 희곡을 쓰고 싶지 않아 지면 어쩌지. 지금 쓰는 이 이야기가 싫어지면 어쩌지.


이게 다 쓸데없는 걱정이면 좋겠다. 이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루함에 좌석에 붙은 모니터로 비행 정보를 몇 번이고 확인하는 사람처럼, 앞으로 희곡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멀리 느껴져 별의별 걱정을 하는 것이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시국에 장막희곡] 너의 지난 삶을 좀 보여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