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전부였던 작은 아이에게
이 이야기는 너에게 바치는 것이란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매일의 밤들이 그만 멈췄으면 좋겠다 했던 너.
아침의 빛이 쨍쨍히도 내리는 날에는, 다가오는 그 어둠을 더욱 선명히 느꼈던 너.
평범함, 그 잔잔하고 평화로운 기운을 훔치듯 갈망했던 너.
그 보통의 일상을, 넘볼 수는 없었으나 꿈꾸었던 너.
검은 밤의 오랜 날들,
더는 컴컴해질 수도 없는 이불속 어둠으로 숨어 들어가
검은 울음을 삼키고 삼키다 지쳐 잠들었던, 작고 작은 너.
앞으로 이 글들은 너에게.
그렇게도 안아주고 싶었던 작은 너에게, 바치는 글이란다.
마흔 하고도 둘.
눈물을 목 뒤로 삼키며 보내온 날들을 헤아려 보자면 족히 마흔 해는 될 것 같다. 차마 내보내지 못한 울음까지 세어보면 그보다 더 많을까.
눈물로 차 있는 삶을 사는 이는 필연적으로 글을 만나게 된다.
쏟아내지 않으면 이마까지 차오른 눈물이란, 더 이상 삶의 진전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거움이다. 그러니 어떻게라도 꺼내야 한다. 그것이 사는 길이니.
나의 글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오랜 울음 속을 파고 들어가는 것으로.
그래, 나는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
기억이란 대개 무심코 바라보는 것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래,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향기를 입고 자연스레 스치듯 찾아오는 때가 대부분이다. 의식이라는 '생각'으로 떠올리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타고 들어왔다 나가는 가벼운 것들.
그런가 하면 기억해 보고자 힘껏 노력을 기울이는 것들도 있다. 어떤 날의 한 장소, 그곳에서의 일과 감정 모두를 떠올리자면 머릿속을 헤집으며 각각의 조각들을 모아야 한다.
어느 한 구석에는 그날이 맑았는지 흐렸는지에 대한 조각이, 또 어느 한 구석에는 그곳의 벽이 흰색이었는지 푸른색이었는지, 탁자는 어떤 모양이었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어떤 풍의 노래였는지 등등의 그런 조각이. 또 어느 구석에는 그래서 그런 곳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갔고, 그 말은 건넨 사람은 무슨 색의 옷을 입었었고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런 종류의 조각들이 곳곳에 박혀 있는 것이다.
모든 조각들을 긁어모아야만 흐릿한 기억은 나름대로의 선명한 형태와 색깔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중에는 가장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린 기억이 있다. 먼지처럼 작아지고 희끄무레해진 채로, 의식의 수면 아래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있는 기억.
이런 기억들은 대개 온전치 않은 장면들로 몇몇 군데가 깨끗하게 지워져 있는데, 이렇듯 뇌는 의도적으로 어떤 기억들의 가지를 잘라 버린다. 머릿속에 공간을 내어줄 필요가 없는 중요성 없는 것들이나 혹은, 남겨두고 싶지 않을 만큼 날카롭게 마음을 찌르는 것들. 대개 그런 것들.
그러니 머리 곳곳에 박힌 조각들을 모아 맞춰 보아도 어렴풋할 뿐이고 각각의 흔적들 간에는 연결성도 없는데 의식에 잡히지도 않는 이것들은 공교롭게도 지금 현재의 모든 생각과 행동, 말, 타인과의 관계 속 반응들을 교묘하게 조정하고 지배한다.
기억들.
그러나 나라는 존재의 뿌리가 되어 온 그 기억들.
부정하고 싶지만 나는 마음속 깊이 침식되어 있는, 그 빛바랜 기억들을 선명히 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수면 아래로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무겁게 차오른 눈물의 시작지. 그곳에서 나는, 무슨 기억부터 꺼내야 가득 찬 눈물을 방울방울 조금씩 떠낼 수 있을지.
희미해진 기억에 색을 입힌다. 색깔을 입히고 나면 어렴풋하게나마, 그리고 천천히 의식의 수면 위로 꺼내어 올릴 수 있겠지. 그리고 그때에서야 목 뒤로 넘어간 채 굳어진 울음은, 눈가에서 눈물을 타고 녹아 흘러내리리라.
기억.
어두운 밤.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웠던 작은 방. 그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짙은 어둠이 다 내린 곳에는, 이제 더 이상의 어두움은 없을 것만 같은데 더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야만 했던 한 아이가 있다.
이불속으로 들어가 두 눈을 감고선.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검은 울음을 기억 아래에 차곡차곡 쌓아갔던 아이.
아이의 그 작은 방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색을 입은 기억의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