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그 손절의 기술

실패 속에서 길어 올린 것

by 하날빛


새벽 4시 50분.


요란하게 알람이 울리면, 떠지지 않는 눈에 손을 갖다 댄다. 슥슥 비비는 행동은 이제는 일어날 시간임을 알리는 것이다.


'조금 더 잘까, 아니 일어나야지'


알람을 끄는 동안, 단 하루도 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던 두 목소리가 귓가에 나지막이 울리고 있고.


여전히 한밤중인 남편과 새근새근 콧소리도 사랑스러운 딸아이는, 옆의 아내와 엄마에게 어떤 분투가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꿈의 세계에 빠져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에 일어나는 거야.


이 짧은 셈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다섯을 세고는 벌떡 일어난다.


성공이다.

일어나 세수하러 걸어가는 발걸음에는 벌써부터 승리에 찬 의기양양함이 들어있다.


'좀 더 자자'라며 달콤스레 울려오는 목소리를 이겨낸, 오늘의 승전 행진.

.

.

.


나의 새벽이 이렇게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8월이 시작되는 월초.

이번 한 달은 새벽 깨우기에 온전히 몰입하자 패기 넘치도록 선언을 했었다.


'의지가 대단하다'는 칭송(?)을 받으며 시작된 나의 프로젝트.


그러나,

한 달 뒤 나의 몰입 과정과 그 성과를 장대하고 보고하게 되리라는 승리감에 '미리' 도취되었던 탓일까.


이 결심은 첫날부터 보기 좋게 꺾인 기세로, 며칠간 지속되었다.


알람은커녕, 심지어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에 눈을 뜬 때도 있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해낼 줄 알았는데, 의지력에 기댄 결과는 처참하다.

사람의 결심이 한낱 종이 한 장처럼 이토록 가벼울 수 있을 줄이야.


나는 패배감에 조금 젖어 있었고 새벽 이야기가 8월 중 내 글에, 언급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8월이 끝나가는 시점,

나의 새벽 기상은 이렇게 마냥 실패에 그친 이야기로 끝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나름의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새벽 기상이, 왜 이리 보유되고 있는지.

나는 그 이유에 파고들어 가 보게 되었다. 실패가 열흘 정도 연이어지고 있던 시점에.


나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보기로 하니, 곳곳에 무너진 틈이 보인다. 누수되고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잠자리가 늦어지는 저녁.

핸드폰 쥐고 있느라 줄줄 새고 있는 시간.

그저 입맛에만 좋다고 몸에 넣고 있는 음식들.


'새벽에 일찍 일어날 것이다. 8월은 10배로 몰입할 것이다' 멋스럽게 선언할 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가 얼마나 텅 빈 '재미'에 이끌리며 살고 있는지, 내 생활부터 살펴봤어야 할 것이었다.


먹는 재미.

보는 재미.

시간을 멋대로 쓰는 재미에 얼마나 휘둘리고 있었는지를.


재미에 끌려다니는 생활 패턴 안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달콤함'이라는 것이다.


대개 버리기 힘든 것들은 달콤하다.


입에서 살살 녹는 군것질거리들이 그렇고.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영상 속 볼거리들이 그렇고.

해야 할 일을 미루게 하는 수많은 유혹 거리들은 대부분 그렇다.


입에 달고

눈에 달고

몸에 달고.


이러한 달달함이 위험한 이유는, 내 상태를 자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일상의 틈으로 파고든다는 것이다.


'습관'이라는 위대하고도 무서운 이름으로.



나는 이렇듯 매 새벽의 참담한 실패를 맛보고 나서야, 내가 이미 뿌리칠 수 없는 달콤함에 지배되고 있다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자,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당장에 군것질을 끊고, 핸드폰을 집어넣고, 잠에 드는 시간을 딱 10시로 맞추는 것과 같은 빠듯한 규칠을 만드는 것일까.

뇌의 도파민과 직결되는 달콤함이라는 것을, 과연 내 의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라는 말인가.


의지력에 의지한 행동 수정은, 어찌 보면 [실패]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 텐데.



그러나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답을 찾아가는 존재라고 했던가.

그때 불현듯 머리를 관통하는 질문 하나가, 스쳐가는 것이다.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그리고 나의 변화는 신기하게도, 아주 세미하게 일어난 그 작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종이를 펼치고 앞으로 내가 개선해야 할 점을 빡빡하게 적어 내려가는 것 대신, 내가 선택한 것은 이 질문에 대답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내 마음에서 들리는, 조용하고 깊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는 것.


사실은,

그렇게 내 몸을 망치는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 나.

내 눈과 귀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들을 보고 싶지 않은 나.

순간순간의 시간을 핸드폰에 빼앗기고 싶지 않은 나.


내가 원하는 것은 전부 출력되는 행동과는 반대되는 것들이었다. 내 마음을 깊이 살피지 못한 탓이었을 것이다.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진정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문을 여는 것과 같은 일인 모양이다.

내 일상의 변화도, 이 지점에서 출발했던 것을 보면.


그때부터는 내가 원하는 느낌에 도달하기 위한 것을 선택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먹는 것.

보는 것.

시간을 쓰는 것.


분명 의지만으로는 안 되었을 것들이, 한 번에 잘려 나가다니.


글을 쓰다 보면 당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입에 달고 살았던 달달하고 자극적인 군것질은 어쩐지 거북스러워진다.


내 몸에 들어와 나의 손과 발, 머리를 둔하게 하는 느낌도 싫다.


틈틈이 머리를 식힌다고 시작해서는 끝도 없이 해댔던 스크롤질도 진절머리가 나게 느껴진다.



행동을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내 내면의 진짜 '원함'을 들어줄 때에야 비로소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던 날들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지', '진짜 느끼고 싶은 것은 어떤 감정인지'에 닿고 나면, 다음의 행동은 그것이 결정하는 것이다.


떨쳐내지 못할 유혹이 순식간에 파고들 때, 잠깐 멈추어 '나'를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동의 변화는 일어날 수 있었다.



새벽 그 자체, 해야 할 일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것을 이루기 위해 내려놓는 것들은, 괴로운 포기가 된다. 새벽에 눈을 뜨는 것조차 잠을 희생하는 것이라 여기게 된다.


그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지

내가 느끼고 싶은 느낌과 감정은 무엇인지


나라는 존재 자체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나면, 그것들은 '나를 위한 흔쾌하고도 신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조금 더 좋은 선택.

희생과 포기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유익한, 어쩌면 고민조차 되지 않는 선택 말이다.



눈 뜬 새벽의 가벼움

새벽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사랑하는 일에의 몰입

글에 초점이 맞춰진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일상


머릿속에 달콤한 먹을거리와 볼거리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의 시선을 마음 안쪽에 있는 이 욕구를 향해 돌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일어나는 거야!'


일어날까 말까의 분투 속에서도, 5초 만에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다.



무언가 결심한 것이 잘되지 않을 때마다, 마음 깊숙한 곳까지 아직 내려가 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보자.


'가짜 즐거움'

욕구의 겉딱지에 해당될 뿐인 달콤함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경험컨대 내면의 조용한 소리는, 들여다보고 들어보고자 할 때에만 들리고 보이는 것들이었다.


내가 원치 않는, 그러나 너무나 달콤하게 나에게 손짓하는 것들에 대해.

오늘도 나는, 시선을 나의 안으로 돌려볼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조금 더 그 안을 들여다보는 데에 시간을 내어주리라.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원하는 '진짜 달콤함의 욕구'를 길어 올리는 것.


이것은 가장 빠르고 쉬운 손절의 기술이다.

억척스럽게도 붙어 있는, 나의 원치 않는 행동들과 이별할 수 있는.





* [하날빛의 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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