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있다면, 충분히 울어도 된다

by 하날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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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아도 일어나라

짓눌러도 일어서라


그렇게 꼿꼿이 일어서고

의연하게 일어서서


세상이 던지는

시련 서린 돌에 맞서

눈물로 피어난 꽃은


얼마나,

찬연한 빛깔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생명의 이슬 같은 내음을 머금고 있는지


감추어지지 않는

숨기어지지 않는

그 찬란한 위엄으로서,


위로하길

감싸 안길





존재의 비밀



삶 속에 슬픔이란 왜 존재하는 것일까.


풀리지 않는 매듭과 같은 질문이 요즘 들어 더욱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건, 아마도 지금 끝을 모르는 긴- 터널 한가운데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고난의 벽이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일부이며, 어쩌면 이것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의 연속이 곧 삶인지도 모른다.



왜, 따스한 양지에서 휴식과 평온함은 그리도 짧은건지.


사람은, 나는.

왜 그보다 더 한참이나 긴 쓰라림의 시간을 걸어야 하는 건지.



의문을 갖지 않아본 인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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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비밀, 그러니까 우리 인생을 휘집어 놓는 슬픔, 아픔이라 불리는 것들.

그것들의 비밀을 이 감정의 절정 가운데서 알게 되었다.


그저 아무 뜻 없는 무게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픔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 보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아픔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하자면, 아픔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사람은 고난의 시간을 통해 깊어지게 된다. 이것은 거부하고 싶을지언정, 누구나가 인정하는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음마저도 나만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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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것은 타인을 위한 것이리라.


아픔의 굴을 지나본 사람은, 누군가의 아픔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다. 말 한마디라도 가벼이 건넬 수 없게 된다. 한 번의 손길이라도 하찮게 여길 수 없게 된다.


그의 아픔은 내가 지나온 그 시간들에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때로 우리는 내 아픔에 진실함으로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서 위로를 건네받고, 내 아픔을 앞서 겪은 사람을 통해 희망의 순간을 기대하게 되지 않는가.



슬픔은 나의 것을 넘어, 타인을 위한 것이다.

아픔의 결과로 얻어지는 성숙함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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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에 내려 앉은 돌덩이를, 하나씩은 품고 살아가는 인생.


웃는 얼굴 뒤에 감추어진 각각이 다른 울음의 이유를 알지는 못해도, 함께 하는 순간 속에서 모양을 알 수 없는 서로의 눈물은 보듬어지고 어루만져지는 모양이다.


함께라는, 그것만으로도.




그러니, 지금 슬픔 속에 있다면

충분히 울자.


충분히 울자.

그리고는 일어나고 일어서자.


나의 아픔이 누군가 아픔에 조금이나마의 위로로 움직일 수 있을테니.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으로 숭고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서로를 위해 지어진.




* [하날빛의 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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