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라는 건,
무엇일까.
이십여 년 만에 다시 편 <어린 왕자>의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어른이 되지 않는다.
어른으로 자라는 것이란, 어느 순간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그저 시간이 만드는 자연스러운 일일뿐이다.
이러한 순리 속에서 아이만이 가진 영롱하고 빛나는 순수함을 지킬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러나 한 사람이 자라나는 이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우리는 곧잘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계산을 몰랐던 우리가 숫자 하나하나를 따지고 분석하며 수치로 나타내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그 수치로 존재의 가치가 평가받게 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세상을 살아가려면 누군가를 다스리고 지배해야만 한다거나 반대로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넘볼 수 없었던 다 자란 이들의 세상에 조금씩,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때 묻지 않은 마음에만 투영되는 것들을, 외면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을 숫자로 생각하고 평가하며
영광스러운 수치를 쌓기 위해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는 매일을 살게 되는 삶의 시작이다.
이렇게 어른이 된다라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른이 되느라 잃어버린
'나'라는 존재에서,
삶에서,
관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마음으로만 읽을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마음.
이것을,
다시 손에 꺼내든 책 <어린 왕자>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 때는 어린이 었던 어른을 위해,
그리고 여전히 어린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꽁꽁 숨겨둔 채 살아가는 어른을 위해 쓰여진 책.
<어린 왕자>는 나에게 이십여 년 전 읽었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진실을, 가슴이 저리도록 알게 해 주었다.
한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내 마음을 티 없이 맑게, 닦고 싶을 정도로.
"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 때문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짧은 명언으로 활용되는 책 속의 한 문장은 그 자체로도 울림이지만, 큰 맥락 속에서 읽혀질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언뜻 읽어만 봐도 마음을 환히 밝혀주는 이 문구들은, 그러나 이 한 줄씩만을 감상하기엔 그 안에 담긴 묘미와 가치가 너무나 크다.
이 문장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에 보이지 않게 숨어있는 이야기 때문이다.
문장 깊숙한 곳 숨겨진, 글자 하나하나를 빛나게 하는 서사.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고
또 거기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는 이제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되는 거지.
..
그렇게 되면 나는 별이 아니라,
웃을 줄 아는 작은 방울 꾸러미를 준 거나
마찬가지 일거야.
그래서 나는 밤에
별들의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오 억 개의 방울과 같다....
내 꽃이 일시적이라니.
그 꽃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 네 개 밖에 없어!
그런 꽃을 별에 혼자 남겨둔 거야..
너희들은 아름다워.
하지만 의미가 없지.
하지만 그 꽃은 너희 모두보다 소중해.
왜냐하면 내가 물을 준 것은
바로 그 꽃이니까.
둥근 덮개를 씌워준 것도 그 꽃이고,
...
그건 내 장미꽃이기 때문이야.
저기 밀밭 보이니?
난 빵을 먹지 않아. 나한테 밀은 쓸모가 없지.
그런데 너의 머리카락이 금빛이잖아.
그러니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아주 멋질 거야!
황금빛으로 물든 밀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럼 난 밀밭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게 될 거야...
이들의 애틋한 서사를 품은 저 두 문장은, 오래도록 우리들의 마음을 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마음으로 보아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속삭임이기에.
어린 왕자에게서 어린이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명랑함보다, 어쩐지 아련한 애잔함이 느껴지는 이유를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며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는 사실 다 커버린 우리 안에 있는 아이 같은 모습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날마다 숫자를 세며 그 숫자를 소유하려 정처 없이 달려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해주는 존재.
그것은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숫자로 셀 수도 없고, 머리로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메아리를 치며 말해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눈을 감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어린 날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어쩌면 그 자체가, 내 안의 어린 왕자인 것은 아니었을까.
아저씨와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어른에게서 흘러나오는 독백으로 읽기 시작하면, 어린 왕자 안의 아련함과 사무침을 흠뻑 느껴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다 자라 버린 나와 나누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린 왕자를 마음속에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느라 잃어버린,
다시 만나야 할 내 안의 어린 왕자를.
여러분이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할 때
그를 잘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 어떤 아이 하나가 다가와
웃음 지으며,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꼭 부탁할 게 있다.
나를 이토록 슬퍼하게 두지 말고,
그가 돌아왔다고
얼른 내게 편지해 주길...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살게 하는가> '노인과 바다'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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