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헤메이는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싹이 틔였다.
땅 위로 나온 건지 아닌 건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싹.
그러기를 한 철, 두 철.
그렇게 오랜 시간, 빈 땅.
그 어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싹의 존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모든 계절을 견디며
땅 속 이곳저곳을 헤매는 곳마다
깊숙이 뿌리를 내리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어떤 존재가 될지,
싹인 자신조차도 알 수 없었던 날들.
아무리 두 눈을 커다랗게 떠도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땅 속.
축축한 흙비린내를 맡으며
이 쪽으로, 저 쪽으로 길게. 길게.
그리고 깊이.
팔을 뻗을 수 있을 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흙 속 구석구석,
있는 힘껏 팔을 뻗어
나라는 존재를
흙 속에 깊이 박는 것 밖엔.
왜인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뻗어내야만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했음을.
'정말 이곳이 내 자리인가'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 거려도
팔을 뻗어내는 자리가 넓어질수록
견고해짐이 느껴져 온다.
따스한 볕이 흙 속에 스며들다가
불꽃같은 뜨거움이 박히고
다시 청명하고 맑은 공기가 퍼지더니
찢어질듯한 날카로운 차가움이 몸을 으스러지게 하기를 몇 차례.
땅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바뀌어가는 시간 동안
싹의 단단하고 깊은 뿌리는 그렇게 땅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건조한 흙만 칼날 같은 바람에 흩날리는
계절이 두 세 차례 지나고서야
움튼 새싹에서 올라가는 가느다란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 치의 구부러짐 없이 곧게 솟아오르는,
하늘을 향한 힘찬 생명의 발돋움.
깊은 뿌리가 빨아들이는
땅 속의 모든 숨들이,
뻗어 올라가는 힘의 원천이 되어 준다는 것을
나무는 이제 알 것도 같다.
제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나무인지,
어디를 향해 뻗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시작은 보이지 않는 땅 속에 깊이 박힌
뿌리에서부터 올라온다는 것을.
나무는 알 것도 같다.
그리고
가느다란 팔을 파르르 떨며
이 자리에, 저 자리에
뻗어내었다가 다시 빼내었다가 반복했던 시간은
그냥 헤매인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짙은 하늘빛으로 물든 저 높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올라 갈 힘은
그 오랜 시간, 어두운 땅 속의 헤매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걸.
나무는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땅.
그 앞에 사람들이 선다.
하늘을 우러러보기 시작한다.
곧고 높게 솟아 오른,
소나무의 꺼지지 않는 푸르름을 보기 위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매일을,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못된 방향은 아닐까.
매 순간 찾아오는 불확실함의 두려움 속에서 이 길인지, 저 길인지도 알지 못한 채 헤매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희미함조차도 없는 앞 길을 만들어가는 일에 멈춤이 없다면.
헤매임마저도 그것은 나의 길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헤매임이 아닌 미지의 세계를 갈구하는 탐험이며,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구도이며, 경건한 마음으로 삶의 이정표를 찾아가는 순례와도 같은 것이므로.
이곳저곳 몸부림치듯 뻗어내기를 반복하는 시간이 헛되이 느껴질지언정.
멈추지 않는 것은,
언젠가.
소멸되지 않는 나의 푸르름으로 하늘과 나란히 서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계속 가자.
계속 헤매이며 앞으로 가자.
지금의 모든 헤매임들은
빛과 바람, 그리고 세월 속에서 나를, 우리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어주리라.
_ 지금, 헤메이는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
* [하날빛의 글 정원]
글로 이끈 삶을, 글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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