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쓸모
글을 쓰는 이유의 가짓수만큼이나 그 효용의 수는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무궁무진하다는 것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엉겨있는 생각을 풀어낸다거나, 먹칠된 감정을 쏟아내고 정리한다거나 혹은 나 자신을 이해한다거나 세상에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
등.
보통 우리가 글쓰기의 '유용함'이라고 하는 그런 것들, 그 너머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가장 큰 쓸모는, 글이 곧 삶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삶을 살아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은 글을 대하고 쓸 때의 그것들과 꼭 닮아있는 것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삶이 달라지는 이유의 반 이상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을 쓰는 활동 그 자체에는, 삶의 자세와 그 형태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삶을 무섭게 쥐고 흔드는 일들도, 이야기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글을 쓰며 배웠다.
이러다 집어 삼켜지는 것은 아닐까 나를 두렵게 했던 아픔, 절망과 상처도 문장 속에서는 그저 하나의 서사가 되는 것은 신비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세상 일들은 그저 글자로 꺼내놓기만 해도,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게 되었다.
무거워진 삶도 언어로 치환하고 나면, 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듯 조금은 그 무거움과 거리를 둘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돌덩이 같은 삶의 무거움도 기꺼이 등에 짊어질 수 있다는걸, 글은 깨닫게 해주었던거다.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결국 모두가,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아닐까. 답을 찾도록 요구하는 물음들.
그 답을 찾기 위해 문제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마주 앉아 문장을 써 내려가는 일은 삶에서 역시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자세와 닮아있다.
그러니 나에게 쓰는 일이란, 도망치지 않는 태도를 의미했으리라. 인생에 퍼부어지는 폭우에 대해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태도.
때로는 모든 감정을 지우고 기계처럼 반복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는걸, 글을 쓰면서 훈련할 수 있었다.
잘 써지는 날이든, 그렇지 않은 날이든 어떠한 글이든지 묵묵히 써 내려가는 건, 늘 뜨겁고 충만한 의미로 가득할 수만은 없는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흔들림 없이 문장을 써 내려갈 때마다 늘 용기가 생겼다.
형편없는 문장이어도, 쓰레기 같은 글이어도, 관심받지 못하는 이야기여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었으니까.
쓰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미움을 받자고, 나에게 용기를 건네었으니까.
매일을 쓰려면 99%의 쓰레기 같은 글을 써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었다.
못난 글을 써도, 아무 해가 없다는 것을.
어떤 시도를 해도, 걱정하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글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매일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시도해 볼 용기를 눈덩이를 굴리듯 점점 더 불리는 일과 같았다.
그럼으로써 나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행동으로 두려움을 이기어 가는 사람.
글을 쓴다는 건, 그러했다.
쓰는 일은 나에게, 결국 가장 나스럽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고 믿는다.
매일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몸에 밴 훈련들은 나를, 내 삶에 충실하고 충만히 사는 사람이 되어가게 해준다고.
조금은 덜 망설이고 덜 고민하며, 조금 더 담대하고 더 의연한 사람이 되어가게 해준다고.
일생에 꼭 한 번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묻는 날이 언젠가, 불쑥 찾아 온다면.
답은 이미, 이 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글을 쓰는 작은 행동 하나만 일상에 끼워 넣어도 온통 삶이 바뀌어 버리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 이것 하나만 떠올려 보아도.
글을 만난 나 자신의 삶, 하나만 다시 곱씹어 생각해보아도.
- 다만 쓰는사람으로 빛나기 위하여, 하날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