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 그 막막함 앞에 서라

by 하날빛


막연함을

뚜렷한 실체로

전환하는 과정은

대개 고통이다.


그럼에도

이 지난한 고통만큼,

큰 보상을 안겨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온 정신을 사로잡는

전율에 가까운 환희.


- 글을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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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것이란, 내 속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는 일이다.


이미 내 안에 있어 내 것이면서도 아직 적당한 언어를 입지 못해 뚜렷한 실체가 없는 생각, 감정, 마음들의 그 사이를, 그 공간을.


먼 곳에 있는 실오라기 같은 생각을, 가까스로 건져올리는 일.

내면 깊숙한 곳에 가라앉은 감정의 조각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일.


그 과정은 대개 고통과 혼란, 의심을 동반한다.

때로 선명하지 않은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느라 첫 문장의 걸음조차 떼지 못할 때가 있고, 무질서한 마음에 파묻혀 한 문장, 그 뒤를 잇지 못할 때도 있다.


붙잡히지 않는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란 이렇듯,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이 되기 전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흐릿하고 무질서하게 떠도는가.


그 무질서함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내면의 잔상들을 하나씩 건져올리고 언어를 입히는 것에는, 그래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그럼에도 타버릴지언정 매번 불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이유는 언어가 태어나는 순간, 하나의 글이 탄생되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삶의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한 기쁨을 안겨주는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


부유하던 것들이 비로소 나의 언어가 되었을 때, 떠돌던 것들이 마침내 나의 세계를 이루었을 때의 환희.


이것은 고통의 불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동력이자, 이유이리라. 동시에 글을 쓰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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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내 안의 혼돈에 질서를 세우고 무명의 생각들에 이름을 입히며 나 자신을 비로소 이해해가는 일이다.


나를 발견하는 여정이면서 동시에, 나를 빚어가는 여정.


매일 이 여정 앞에 선다.


무질서함 속에서 언어를 찾아 헤매는 고통 앞에.

손에 잡히지 않는 생각을 더듬는 막막함 앞에.

한 문장 뒤를 잇지 못하는 정적의 혼란 앞에.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온 정신을 사로잡는 전율의 환희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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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고 있다.

헤맴과 발견이 공존하는 길을 지나는 동안, 나 자신은 조금씩 더 선명해지리라는 것을.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이 막막함 앞에 기꺼이 서리라.


내 안의 혼돈을 통과해 비로소 형체가 되는, 나의 언어를 만나기 위해.


언어를 찾아 헤매는 고통 속에서, 나를 발견케 되는 환희를 만나기 위해.





* [하날빛의 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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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