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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안하나이하나 Feb 13. 2022

이별을 이겨내는 몇 가지 방법

 서른아홉, 최근 3년 사이에 두 번의 이별을 했다. 한 번은 상대 잘못으로 내가 이별 통보를 했고, 다른 한 번은 서로가 헤어지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던 차에 상대의 입을 통해 통보를 받았다. 통보를 하건 통보를 받건 이별은 늘 아프기 마련이다. 나처럼 결혼 적령기를 훌쩍 지난 나이엔 더 아프고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강력한 펀치라인을 연달아 맞고 쌍코피가 터진 채 링 위에 널브러진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사실 살면서 한 번도 결혼 적령기를 생각해본 적도 적령기란 나이에 동의해본 적도 없다. 이런 생각조차 안 하고 내 멋대로 살아와서 여기까지 온건가 싶기도 하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 적령기를 꼭 명심하겠다!)



 이십 대 후반부터 서른 초반까지 나는 솔로 라이프에 만족하며 비혼까지 생각했던 터라 꽤 긴 연애 공백기가 있었다. 서른 중반에 어찌 인연이 되어 다시 연애를 시작하고 이별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엄마를 통해 느끼던 애정을 애인을 통해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애인과의 이별엄마와의 이별만큼 두려 것이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원치 않는 이별을 하면서 느꼈던 아픈 감정들이 애인과의 이별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연애 스타일이 비슷하고 집도 가까워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만났을 정도로 애착이 깊었다. 이별의 타격은 더욱 컸다.





 분노의 노트 작성하기

 이별 후 나는 갈기갈기 찢겼다. 이별을 고하고 통보받은 날엔 드디어 끝냈다는 후련함도 있었다. 이별 당일엔 오히려 이성적이라,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나는 나를 더 사랑하니까 잘 헤어진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갈수록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아프고 힘들다 정도의 감정이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자꾸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는 그 물음을 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깊숙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몰려오는 감정들은 딱히 풀 곳도 없어서 그저 노트에 쓰고 또 썼다. 우습게도 이번 이별 후엔 '이전 패턴들은 어땠지?' 하고 그 기록들을 들춰보며 나름의 가이딩을 삼고 있다. '아, 두 달까지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감정이 들락날락했구나. 세 달째 되면서 기록이 좀 뜸해진 걸 보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나 보구나...' 뭐, 이런 식이다.

그 노트를 나는 '분노의 노트'라 부른다. 보통 사람들이 상실을 경험했을 때,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고 한다. 내 노트엔 상대와 나, 이별에 대한 분노와 내가 나에게 전하는 타협의 이야기들이 가장 많이 적혀있다. '타협의 노트'라고 부르기엔 날 것 그대로의 들쭉날쭉한 감정들이 너무 많이 담겨 있다. 아무래도 '분노의 노트'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도 노트 한 권을 꽉 채워 작성해본 적이 없는데 '분노의 노트'는 100매에 달하는 할당량을 모두 채우고 제 할 일을 마쳤다. 새 노트가 필요할 즈음 이곳에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제 어느 정도 분노는 사그라들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라 믿고 싶다. '분노의 노트'를 언젠가는 '진실의 노트'라든지 '깨달음의 노트' 정도로 부를 날이 왔으면 좋겠다.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기

 이별 후에 연락할 친구들이라도 많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자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망할 코로나 때문에 이도 저도 불가하다. 그나마 있는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는 주로 카톡이나 메신저로 대화를 하니 손가락 근력 강화에만 미약한 도움이 된다. 매일을 보고 재잘거리던 상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재택이라 하루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지금은 하루에 열 마디나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이별 후 몸이라도 좀 움직이면 나으려나 싶어 집 앞 '커브스'에 등록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의외 효과가 좋았다. 작. 심. 삼. 일! 한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해본 적이 없던 내게 '살을 빼서 예뻐져야지' 보다 '할 일이 없으니 뭐라도 해서 시간이나 때우자'란 생각이 의외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죽지 못할 바엔 버텨내야 할 지금 이 시간을 헛되게 쓰지는 말자 싶었다. 집을 나서서 찬 공기를 쐬고 거리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각자의 무게로 오늘 하루도 어찌어찌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 기분 조금은 나아졌다. 시간 때우기용으로 시작한 운동조금씩 활력을 찾아주었다. 살도 자연스레 빠지면서 체지방률 18.7%건강한 몸이 되었다. 죽고 싶다며 나날이 건강해지는 상황이 어이없지만 싫지 않았다. 근력이 붙은 내 몸을 보며 마음의 근육도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되고 뿌듯했다.

커브스는 1년째 꾸준히 다니고 있다. 다만 이번 이별 후엔 커브스 만으로는 안 되겠어서 3개월에 10만 원 하는 헬스장을 하나 더 등록했다. (예전 같으면 헬스장 두 곳을 다닌다는 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는데 이별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 GX로 요가와 줌바를 하는 곳이라 조금씩 할 겸 1월 말에 등록했는데 놀랍게도 출석률이 80%가 넘는다. (그래, 난 정말 할 일이 없다...) 트레이너는 매일 운동하는 나를 보고 이 정도의 근력은 보통 여자에게서 보기 드물다며 내게 운동선수였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조금만 더 다듬어서 바디 프로필을 찍어보라고도 했다. 나는 바디 프로필이고 나발이고 그저 7일 내내 나가는 운동을 주 3회 나갈 정도로, 내 마음이 여유를 찾아 평온해지거나 새로운 연애로 좀 바빠졌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이별을 이겨내기 위한 지독한 운동 중독에 빠져있다. 그러고 보니 타이틀을 '조금 많이 무리하는 선에서 빡세게 운동하기'로 바꿔야 할까 싶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일들을 반복적으로 한다. 라디오를 듣고 '어쩌다 어른'을 정주행 중이고, 유튜브에서 김달과 곽정은의 콘텐츠를 보며 자존감 회복에 도움을 받고 있다. 베이킹을 하고 책을 읽거나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제빵에 비해) 그램 수도 디테일하게 맞춰야 하고 챙겨야 할 재료나 성형 과정도 좀 더 복잡한 제과 디저트들을 만들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레시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오븐에서 굽굽, 먹음직스러운 색을 내는 디저트들은 냄새도 맛도 사랑스럽다. 물론 결과물들은 대부분 내 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나날이 뱃살이 느는 느낌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조금 많이 무리하는 선에서 빡센 운동을 겸행 중이다.  

책은 읽는 것보다 구경하고 곁에 쌓아놓는걸 여전히 더 좋아한다. 이별 전까지만 해도 서점에 가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엔 집 앞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들을 몇 개 골라온다.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와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고 있다.  


상담을 받고 있고 술을 좀 마시기도 한다.(고 쓰고 매일 마신다.) 원래 술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과한 음주는 지금의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기에 한두 잔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글을 쓸 용기를 내거나 수면에 도움을 받는다거나...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도 우울감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러니 이게 이별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 이별은 이미 이겨냈을지 모른다. 헤어졌다는 사실보다 이제 서른아홉이란 내 나이와 엄마의 부재, 아빠의 건강 때문에 드는 걱정과 슬픔, 불안과 두려움... 이런 감정들이 나를 자꾸 흔들고 뒷걸음치게 만든다. 나는 이별을 이겨내는 방법이 아니라 외로운 인생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어른' 4화에 '어른이 된 우리, 왜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른이 되어도 답을 내릴 수 없는 '삶'의 의미를 찾아보자고 모인 패널들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결론적으로 인류는 수세기 전부터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을 갖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 답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 '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보단 이왕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단 얘기로 마무리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했던 20대를 지나 30대의 끝자락에서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흔들리는 하루를 살고 있다. 나는 지난 세기의 천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인간이라 그들 조차 찾지 못한 답을 찾을 재간이 없다. 그러니 이 고민은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하... 사는 건 역시 고달프다.


 낮 기온이 10도까지 오를 정도로 며칠 사이 많이 따뜻해졌다. 곧 봄이 오려나보다. 고달픈 삶이지만 곧 다가올 봄과 함께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이 다시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희망으로 변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곧 봄이 올 거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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