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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안하나이하나 Feb 14. 2022

서른 아홉 오늘의 내가 서른 하나 오늘의 나를 본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네이버 블로그 앱에 들어갔다가 '8년 전, 오늘' 알림을 확인했다. 20대엔 블로그에 꽤나 열심히 글을 쓰고 기록들을 남겼었다. 썸네일 이미지 속엔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마치 세상 저 끝으로 치닫는 듯한 내가 있었다. 지독한 우울의 끝에 선 오늘의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행복했던 순간 속 오늘의 나를 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삼십대의 끝자락에서 보는, 갓 서른 하나가 된 오늘의 내 모습이었다. 조금 우습고... 많이 그리웠다. 서른 하나의 나는 정말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기억들로 몇 년을 더 살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때 느꼈던 행복과 기쁨, 환희의 벅찬 감정들이 지금 나를, 그리고 앞으로의 나를 지탱해줄 일부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8년 전, 남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지 보름이 조금 지났을 때의 나의 오늘을 다시 꺼내보았다. 





 몇 년 전, 게장녀가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심리를 공부하면서 사람들은 보면 '저 사람은 저래서 저렇고 이 사람은 이래서 이렇구나.' 하고 이제 조금씩 그려지는데 안그려지는 사람이 딱 2명 있어. 내 남자친구랑 너..."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릴적부터 항상 그게 아주 많이 궁금했다. 고등학생 때에는 내가 누군지에 대해 자꾸만 커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처음으로 상담을 받아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대학생 때는 주변에 상담을 받는 친구를 보며 이상하다고 느끼기보다는 꽤 큰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그 아이가 부러웠다. 


 드디어 오늘, 나는 첫 상담을 시작했다! 뭔가가 이상해서, 문제가 있어서, 답답해서, 힘들어서가 아니라 요즘의 나는 그 언제보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지만 내가 누군지 궁금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나 말고 이면의 내가 존재하는지, 이면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가 궁금했고 내가 하는 행동들이 그와 연관이 있는지, 나는 정말 어떤 사람인지 나를 천천히 탐구해보고 싶었다. 그 탐구가 앞으로의 내 인생을 좀 더 건강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상담은 나를 천천히 여행하는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상담을 하면서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날거예요. 제가 마음을 많이 건드려놓을 거거든요.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으면 돼요. 천천히 나를 드러내고 들여다보면서 내 안에 꼬여있는 매듭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거예요."  


 나를 천천히 여행하는 시간, 첫날인데도 나는 꽤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짧은 1시간동안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상담 중간중간 쌤은 나에게 '지금 마음이 어때요? 지금 느끼는 감정은 어떤가요? 그때 기분은 어땠어요?' 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순간들에 대한 느낌, 감정,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애매했다. 가슴이 뛰고 있으니 감정을 못 느끼는 것도,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닌데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에 크게 요동이 일지 않는 이 상태를 뭐라고 표현해야할지를 몰랐다. '그냥 無의 상태라고 해야할까요?' 라는 바보 같은 대답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부터 내 느낌, 감정, 마음에 대해 조금 더, 자주 귀를 기울여야겠단 생각을 했다. 


 나를 알아가는 첫 걸음을 이제 떼었으니 나는 또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서른 하나, 이제 나를 좀 더 잘 알 때도 되었다. 




 첫 상담을 시작했던 때의 기록을 남겨두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서른 하나의 나는 아주 호기롭고 귀여워서, 지금의 내가 서른 하나의 나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저 기쁘고 대견한 마음으로 꼬옥 한번 안아주고 싶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내 자신이 궁금해서 첫 상담을 시작하고는 8년이 흘렀다. 겁없이 시작했던 '나를 여행하는 시간'은 정말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8년간 총 세 분의 상담선생님과 근 1년씩을 보냈다. 지금도 '나를 여행하는 시간'은 현재 진행형으로 흘러가고 있다. 비단 나라는 사람이 복잡해서라기 보단, 나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과정이 그만큼 복잡하고 끝이 없는 것 같다. 가끔은 무섭고 두렵다. 특히 요즘같이 죽음을 한발치 사이에 두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할지라도 서른하나, 오늘의 나를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되고 힘을 내고 싶어졌다. 너무나 호기롭고 귀여웠던 서른하나의 나에게, 서른아홉의 내가 무겁고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결말을 안겨주고 싶진 않다. 그래서 오늘도 또 쓴다. 쓰면서 나는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나아가고, 내 삶에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8년 전 오늘이나, 2022년 오늘이나, 밸렌타인 데이다. 하하... 

사랑을 고백해줄 이가 없는 오늘, 내가 나를 좀 더 사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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