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중심으로 윤여정 열풍이 불고 있다. ‘윤며든다(윤여정에게 스며든다는 뜻)’, ‘휴먼여정체’ 등의 신조어는 그가 세대를 초월해 얼마나 큰 사랑을 받는지 보여준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일흔넷의 배우가 어떻게 이토록 큰 사랑를 받게 된 걸까? 분명한 것은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기 전부터 이미 윤여정 신드롬은 시작되었다는 점. MZ세대가 느끼는 ‘원터풀 윤여정’의 매력을 살펴본다.
MZ세대와의 연결 고리 ‘자기다움’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배우다. 내 이름은 윤여정이고, 나는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아카데미 수상을 앞두고 한 해외 매체에서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아니냐”고 묻자 윤여정은 이렇게 답했다. 그가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 메릴 스트립을 몰라서가 아니다. 배우로서 누군가 비교되기 보다는 ‘윤여정’ 그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MZ세대가 추구하는 자기다움과 일치한다. (기성세대에 비해) 공동체를 위한 획일화를 강요당하기보단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받으면서 자란 MZ세대는 타인의 인정보다 자기 만족을 우선시한다.
소비를 할 때도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는 브랜드를 찾아서 소비하는 것이 특징이다. ‘솔직함’ 역시 윤여정과 MZ세대의 닮은 부분이다. MZ세대는 조직에서 강요하는 불필요한 충성만큼 괴로운 건 없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할 말은 하는 편이다. 이 점이 기성세대가 보기엔 이기적이고 애사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MZ세대는 공직사회에 권위주의와 서열 문화를 흔들고, 대기업의 잇따른 연봉 인상, 사무직 노조 설립 등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윤여정이 <윤식당>, <윤스테이> 등 예능을 통해 꾸준히 보여주는 모습도 ‘자연스러움’이다. 이 프로그램들을 연출한 나영석 PD가 “카메라 앞과 실제 모습이 오차가 1%인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녀는 솔직하다. 그렇다고 해서 선을 넘진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평소 “민폐 끼치는 게 제일 싫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일례로 한 패션 매거진 커버 촬영에서 윤여정을 처음 만난 연시우 비주얼 디렉터는 “패션 매거진 기자로 10년 넘게 일하는 동안 페이스 커버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윤여정이) 처음”이라고 했다.
옷 잘 입기로 유명한 윤여정은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의 모델에 발탁되어 이목을 끌었다. 광고 속에서 그녀는 “옷 입는데 남의 눈치 볼 거 뭐 있냐”라며, “니네들 맘대로 사세요”라는 대사를 찰떡같이 소화한다. 비단 광고 속에서만이아니다. 그녀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후 드레스 위에 항공 점퍼를 툭 걸친 힙한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1020여성이 주 고객층인 패션 플랫폼의 모델이 왜 윤여정이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세월의 내공이 느껴지는 ‘어른다움’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 트로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114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 안에서 재벌부터 초등학교 교장, 부동산 중개인, 해녀, 수녀 등 셀 수 없이 많은 역할을 소화했다. 그녀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은 ‘돈 벌기 위해 일하는’ 생계형 배우였다고 말했는데, 실제 배우 윤여정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자타공인 도전형 배우임을알 수 있다. 다른 배우의 거절로 그녀에게 돌아간 <바람난 가족>의 병한 역부터 <돈의 맛>에서 젊은 남자를 탐하는 재벌, <죽여주는 여자>에서 미군 기지촌을 거친 노년의 성매매 여성 등 돈보다는 시나리오와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선택한 역할이 많았다.
아카데미 연기상 트로피를 안겨준 영화 <미나리>를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 촬영 전까지 주변의 만류가 컸지만,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면 괴물이 된다”라며 사비까지 들여 미국으로 날아갔다. 더러 후회할 때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이미연이 “선택한 작품이 마음에안 들 땐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윤여정은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다 잃는 것 같아도 사람은 또 얻어”라고 답했다.
최근 2030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있는 여성 커리어 문제 해결 플랫폼 ‘헤이조이스’는 ‘어른다움’을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로 삼고 있다. 이 회사가 정의한 어른다움은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다. 바로 윤여정의 모습이다. 혹자는 MZ세대가 7080 할매할배에 열광하는 것은 그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4050세대의 꼰대 문화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해석한다.
완고하고, 고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감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열린 태도를 보여주는 윤여정, 밀라논나와 같은 7080세대에 대한 환호로 이어졌다는 것.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윤여정 신드롬의 기저에는 단단한 축으로 세월을 견뎌온 그녀만의 ‘내공’이 있다는 점이다. “어른이 없다”라는 자조가 만연한 시대에 윤여정이라는 닮고 싶은 어른이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