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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Apr 20. 2023

To Infinity and Beyond!

'토이스토리'를 보고

우리는 모두 이별의 밤하늘 아래 살고 있다. 만남은 이별과 같다는 말이 있듯,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보내고, 혹은 떠나가길 반복한다. 그것은 사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유흥 삼아 사들인 인형과 옷, 장신구는 쓸모를 다하면 버려지기 십상이다. 어릴 적 친근한 이름을 붙여주고 사랑했던 커다란 곰인형도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그런 일들이 오늘따라 마음에 걸린다.


 몇몇 어르신들이 잘못된 역사가 바로잡히는 과정에서 큰 반발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들에게 그때의 대통령은, 그 당시의 정치인은 당신들의 삶 자체였기 때문에 그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 정책이 잘못된 것임을 알아도 그걸 인정하는 순간, 저들의 삶마저 부정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들이 행한 것 또한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그저 젊은 사람들을 얕보는 오만과 아집으로 인한 행위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고 그들을 배척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멋대로 판단하고, 제 생각에 먹혀 상대를 보지 않았던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 어르신들에게 대통령이 그러했던 것처럼 몇몇 사물은 한 사람의 유년기를, 혹은 삶을 담는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에는 그 인형을 선물 받던 순간의 기쁨, 나의 웃음소리에 함께 행복해하던 가족들의 미소가 담겨있다. 뛰어난 상상력 탓에 밤이 무서워지면 끌어안던 베개에는 그날의 어둠이 있고, 밤새 읽어낸 초등학생용 치고는 제법 두꺼운 판타지 소설에는 딱 그러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 어디에도 딱 그 정도의 용도로 존재하는 사물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곳에 누군가의 추억이, 감정이, 생각이 녹아있다. 문득, <토이스토리>가 진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의미로 살아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물은, 그렇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예전에-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무렵이었던 것 같다- 짱구에 나오는 유리가 토끼 인형을 때리는 것을 보고는 순간 꽂혀서 애정하는 곰인형을 때린 적이 있다. 일주일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반복된 그 행위의 결과는 혹독했다. 여느 날처럼 흥미 삼아 곰인형을 때리고 잠든 날, 그 밤에 그 인형이 찾아왔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저벅저벅 걸어온 그것은 그저 멀뚱히 날 바라봤던 것 같다. 아니, 복수라도 하는 냥 날 때렸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날 밤의 공포는 선연하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깨어났던 그날 밤, 일어나자마자 인형을 찾았다. 바닥에 늘어진 인형의 까만 두 눈동자를 기억한다.


 고등학교 무렵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기숙사를 다녔는데 기숙사 인원이 적어 우리 학년 기숙사생은 모두가 절친한 친구였다. 밤이면 늘 한 방에 모여 과자파티를 벌였고, 그날도 평소와 같았다. 점등 후라 자그마한 휴대용 전등 하나를 바닥에 고정해 놓고 둘러앉아 있었다. 엄한 사감선생님 탓에 소리를 죽여 속닥이고 있는데, 어딘가 음산한 느낌이 났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던 듯 몇몇 친구들이 동시에 흠칫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소리 같은 게 들렸던 듯하다. 어딘가 하여 두리번거리는데 2층 침대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어라, 우리는 모두 여기 있는데? 누가 있었나, 하는 의문에 한 친구가 침대로 향했다.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 선물 받았던 자그마한 인형 외에는.

 그 후로 그 인형은 저주받은 인형이라 불리며 기숙사생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아직도 무엇이 움직였던 것인지 모른다. 창문은 닫혀있었고, 누구도 없었다. 그저 우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때로, 강렬한 예감에 휩싸인다. 그건, 진짜였던 것 같다는.


 설령 그러한 것들이 그저 양심의 부름, 혹은 단순한 착각에 불과했을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퍽 흥미롭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만으로 그득한 세상이라면 조금 시시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러한 것들 중 흔히 악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있을지라도, <토이스토리>의 토이들처럼 우리는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우리만을 바라고 사랑했던 존재들이 있었다면,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동시에 조금 슬프기도 하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헌신과 갈구 속에 살았지만 끝내 저의 존재를 상대에게 알리지는 못했으니까. 버려질 운명으로 우리를 사랑한 것이니까.


 이제부터는 영혼 작별식이라도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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