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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Apr 27. 2023

안녕, 얘들아

과외를 끝내며

 여름의 뜨거움이 아직 가시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친구의 요청으로 우연히 시작한 과외를 끝냈다. 어릴 적부터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봤던 터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작한 과외는, 사실 탈도 많았다. 졸업 후 수학, 영어와는 담쌓고 살아왔던 터라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막막함이 그러했고, 나보다 어린아이를 돌본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 그러했다.


 처음 과외 요청을 받고 2주 후 첫 수업을 시작했다. 책을 한 아름 안고 카페에 앉아 아이를 기다렸다. 처음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레벨테스트를 하고 수업을 진행할지에 대해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한 뒤였다. 긴장으로 경직된 자세로 책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이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았다. 중학교 2학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남학생이라길래 나보다 큰, 앳된 티가 나나 얼핏 보면 어른과 다름없는 피지컬을 예상하며 떨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으리만큼 조그마한 체구와 커다랗고 맑은 눈, 낯설어서인지 약간은 주춤거리며 의자에 앉는 기색이 정말 그냥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성품도 외관과 비슷했다. 수업 중 딴짓 한 번 하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려 노력했으며 자그마한 칭찬에도 맑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어쩌다 일상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신기해하며 물어왔다. 궁금한 것이 많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 그러나 사실은 노는 것이 가장 즐거운 아이였다.


 아이와의 수업은 즐거웠다. 수업준비를 하며 그간 잊었던 여러 내용들을 복습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늘 연장자들 틈에서 가르침을 받기만 했던 내가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다행히 아이도 나와의 수업이 즐거웠는지 사촌과 친구에게 추천해 주어 두 명의 학생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어떤 복을 타고난 것인지, 다른 두 아이들도 무척 착하고 예뻤다. 열정적이었고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지닌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물론 그들과의 수업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다. 열정과는 별개로 아직은 아이들이라 그런지 수업 중 졸거나 엎드려 자는 경우도 있었고, 일 대 일로 한 문제를 하고 있는데 설명이 끝난 후에야 "우리 몇 번 문제 한 거예요?"라고 묻기도 했다.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숙제를 안 해 와 마음 졸였던 적도 있고 수업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기에 연락했더니 깜박했다고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답답했던 건,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였다.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고, 마음껏 풀어내지 못함에 약간의 짜증이 나 있는 아이를 볼 때면 가끔 화도 났다. 조금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을까. 조금이라도 더 와닿게 이야기해 줄 수 없을까.


 어느 날 한 아이가 와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저 인문계 고등학교는 갈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너무 불안해하시는데 불안을 해소시켜 드릴 수가 없어서 속상해요."


 처음, 아니 사실 지금도 가장 큰 목표이자 이상향은 '아이들이 즐겁게 학습하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 격려받고,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것. 그것이 학습의 가장 큰 목표이자 선생님으로서 해 주어야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부모님들이 원하신 것도 그런 면이 컸다. 그러나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바닥을 보며 고개 숙인 아이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결과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미래를 그리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어쩌면 이전부터 은연중에 알고 있던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성적이라는 명확한 지표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자신감이 될 수 있는지를.


 한 번 그 사실을 인식하고 나니 더 부담스러웠다. 한 번이라도 아이 스스로도 기대하지 못한 점수를 받게 하고 싶었다. 늘 위축되어 있는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동시에 그 과정이 즐거웠으면 했다. 그래서 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즐기면서, 틀려도 괜찮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좋은 결과를 성취하길 바랐으니까.


 속상한 적도 많았다. '즐겁게 학습하자!'가 모토인 것과는 별개로 나는 과도할 만큼 진지하고 따분한 사람이니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능력도 없었고, 속상해할 때 해줄 수 있는 적절한 말도 찾지 못했다. "잘했어. 이렇게 시도해 보는 게 맞아. 이런 방법의 접근도 좋은데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푸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아직 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헷갈리는 게 당연해. 연습하다 보면 더 좋아질 거야." 같은 상투적인 말이,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가끔은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의 중요한 시기를, 능력 없는 사람이 함께 해서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청소년기에, 그리고 삶 전반에서 어린 시절 만났던 선생님의 존재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기에 더 그랬다.


 다사다난했던 과외는 내달 해외로 떠나게 되면서 끝이 나게 되었다. 아이들의 중간고사를 끝으로 이별하게 된 것이다. 수업을 끝내고 한 동안 놀 생각을 하니 끝이 기다려지면서도 아쉬웠다. 일이라기에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일을 떠나보낸다는 게 퍽 섭섭했다.


 한 명, 한 명 수업을 끝내며 선물을 줬다. 부담스러울까 고민하다 적은 편지까지 함께 보낸 후 학부모님들께는 피드백 및 수업종료 공지를 보냈다.


 한 아이는 직접 산 에그타르트를 건넸다. 수업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내 손에 쥐어주며 아이는 "선생님 드리려고 제가 직접 산 거예요. 제 용돈으로 샀어요."라는 말을 세 번 정도 반복했다.


 또 다른 아이는 수업이 끝나고 작별 인사를 하고 있자니 테이블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선생님, 선생님께 뭐라도 사드리고 싶은데 내려가서 빵이라도 사드려도 될까요?" 라며 마음을 전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조심히, 건강하게 해외 다녀오라며 인사해 주었다.


 학부모님들도 그동안 감사했다며, 돌아오면 다시 수업해 달라고, 무운을 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별 것 아닌 말들이 왜 그리 마음을 헤집던지. 눈물이 차올랐다. 형편없게 느껴지던 지난날들을, 그래도 꽤 열심히, 잘 살아냈구나, 싶어서. 마음이 울렁였다.


 좋은 선생님들을 보며, 또래 친구들에게 몇몇 이론을 설명해 주며 가볍게 꿈꾸어봤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한층 더 마음에 다가왔다.


 어느새 서늘함이 가시고 푸른 잎이 세상을 메우기 시작한 어느 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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