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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Nov 19. 2023

비명

단편소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개를 숙인 여성을 향해 마주 허리를 숙였다. 약간의 슬픔과 여럿의 난감함을 담은 얼굴이었다. 당연하다. 그녀와 어머니는 일면식조차 없었으니.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상중에 괜히 불편하게 해 드려 제가 죄송할 따름이지요."


그녀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약 한 주 전. 아직은 어머니가 그 일을 하고 계시던 무렵이었다. 그 일이란 내가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어머니가 아직 이립에 접어들기 전부터 줄곧 해오시던 것으로, 지금으로 따지자면, 그래, '심리상담'이라고 부를 법한 것이다. 세 오누이를 낳고 부쩍 몸이 안 좋아진 어머니는 그 무렵부터 집 안에서만 머물렀다. 제법 벌이가 좋은 일을 하는 지아비를 둔 덕에 - 더군다나 어머니 당신도 소싯적 뛰어난 작가로 벌이를 하셨기에-우리의 살림은 넉넉한 편이었다. 집도 제법 크고 그 시절엔 흔하지 않던 컴퓨터도 있었기에 집안에 머무는 일이 퍽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사람을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기를 즐겼던 그녀는 외로워했다. 당신 입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 갓난쟁이인 오누이들을 어르며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문득 시든 꽃잎마냥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느 날엔 불 한 점 들지 않는 방 안에 홀로 앉아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더랬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은 퍽 위태로워 보여 울며 그녀의 품에 안겼었다.


무심한 듯 가족을 사랑한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의 상태를 눈치채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학창 시절 온갖 행사에 참여하며 기량을 보이던 어머니의 모습에 반한 그인 만큼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갖가지 모임을 소개해주었다.


이전만큼 활동적인 일은 힘들더라도 가벼운 다도, 독서, 산책 정도는 가능했기에 그런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잠시나마 어머니는 행복해 보였다. 구슬픈 미소가 아닌 맑은 웃음을 되찾았다. 저녁상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읽었는지, 세상에 얼마나 재밌는 일들이 가득한지, 집 앞 전경이 어떠했는지를 들떠 말하곤 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녀의 마음과는 별개로 그녀의 몸에 한계가 찾아왔고, 곧 그녀는 모든 외부활동을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외부와의 단절에 다시 그녀는 나날이 시들어갔다.


다 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하나 둘 우리 집에 방문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머니의 주치의에게서 들은 것인지, 아버지가 부른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좁은 마을이라 입소문이 빨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마을에 어머니를 아는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루에 한 명, 혹은 두 명씩 어머니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와서 특별한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옆집 최 씨네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고것이 아주 영특하다는 것, 이번에 상경한 이 씨네 아들이 탈랜트인지 뭔지가 되어서 텔레비전에 나왔다는 것, 마을잔치에서 국수를 나눠먹었는데 지랄 맞은 김 씨 영감이 국물이 어떻네 저떻네 떠들어 샀더니 종국엔 온 상을 뒤엎어버렸다는 것 따위였다.


그것이 무에 그리 즐거운지 어머니는 그 야윈 몸을 앞으로 내밀고는 입이 찢어지게 웃곤 했다.


어머니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상대가 화를 내면 얼굴이 벌게져 함께 화를 내고, 조금이라도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면 저가 더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기쁜 이야기에는 어린아이마냥 볼을 붉게 물들이곤 했다. 더군다나 입이 무거워 남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그게 마을 사람들에게는 위안이고 기쁨이었다. 처음엔 그녀가 안타까워 찾던 이들이 점차 저들이 즐거워 문지방이 다 일도록 넘나들었던 것도 다 그런 연유였다.


어머니의 그 일은 작고하시기 이틀 전까지도 줄곧 이어졌다. 병색이 완연했으나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아직도 어린 소녀 같은 모습이어서 이렇듯 순식간에 눈 감으실 줄은 전연 몰랐다.


"저.. 상중에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후에 괜찮으실 때, 한 번 연락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희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라서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때문에 눈앞의 이 여성도 꽤 곤란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중소 편집 회사의 직원으로, 어머니와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서 이 먼 시골로 내려오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왔다고 한다. 그는 나름 유명했던 작가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녀의 회사를 일으켜준 이라고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젊은 나이에 작고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담은 서적을 내고 싶어 했는데 그에게 어떤 애틋함이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절친한 벗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쉰 그녀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물러갔다.









_



그녀의 명함을 발견한 건, 어머니의 49제 때였다. 여러모로 정신없는 한 달을 보내고 짐을 정리하다 툭 떨구어진 것을 보고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생각해 냈다.


매끈한 명함을 쓸어 넘기다 낯선 번호로 연락했다. 불쑥 그녀의 간절한 눈이 떠올랐던 탓이다.








_


"연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뇨, 그러기로 했던 걸요."


부스럭거리며 그녀가 종이와 책을 꺼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책과 마찬가지로 낯익은 얼굴이 그려진 사진이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어떤 분의 생애를 쫓고 있어요. 이 책을 쓰신 작가님으로, 제게는 은인이시거든요. 어머님께서 작가님과 절친하셨다고 들어서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청하고자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눈에는 큰 기대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 작가가 죽은 것은 15년 전으로, 당시 나는 고작 10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있을 리가.


그러나 신기하게도 작가의 사진을 보는 순간 어떠한 장면이 떠올랐다.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어쩌면 최초의 기억일지도 모를 어느 날의 일이었다. 어머니의 품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찰흙 놀이를 하던 때, 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중얼거리듯 한, 그때는 이해되지 않던 말이 불쑥 떠오른다.


"왜,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잖아요.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이 성장하고 그러면서 극복하고 행복해져. 예쁘죠.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붕 뜨기도 해요. 나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서."


밑동이 보이는 술잔을 조용히 젓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던 것 같다. 새까만 눈동자가 지금보다 젊은 어머니와 어린 나를 비춘다.


"그런데 현실은 다른 거 있죠. 나아지다가도 돌아가요. 극복했구나 싶어서 행복해지면, 우습지 말라는 듯이 다시 몰려와. 그러면 그제서야 깨닫는 거죠. 아, 이건 완전히 나을 수 없는 거구나.


마음이라는 게 참 지긋지긋한 게, 괜찮아지다가도 불쑥 아파오고, 나아지다가도 숨이 막혀요. 나조차도 이렇게 지긋지긋하기만 한데 남들은 얼마나 더 할까. 그럴 때면 숨이 끊어지는 걸 상상해. 언젠가는 버려질 거라면, 모두에게 슬픔으로만 남을 거라면, 그냥, 지금..


왜. 자전거 바퀴가 터지면 바퀴를 갈면 되지만, 전체가 휘어져버리면, 다시 사는 게 낫잖아. 꼭 그것 같아. 이만큼 망가져버렸으면 죽는 게, 서로한테 낫잖아요?"


쥐어짜 내는 듯한 음성이 귓가에 울린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 세상이 조금만 더 잔인했으면 좋겠다. 이 애매한 희망도, 구질구질한 미련도 모두 끊어지게끔. 그럴 수 있게, 조금만 더 잔인했으면 좋겠다.


그럴 때면 괜히 가족들에게 화를 내곤 해요. 이제 못 참겠지? 지치지? 내쳐 줘. 필요 없다고, 나가 죽어버리라고. 그 한 마디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또 가족들이 얼싸안아주면, 마음을 놓아요. 꼭 기다린 것처럼. 우습죠? 내 마음 하나 어쩌질 못해서 온갖 곳에 패악은 다 부리고 떼쓰고 있는 거야."


푹 숙인 그녀의 머리칼이 그녀의 얼굴을 감추었다. 그녀는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꼭 머리카락으로 세상으로부터 저를 감추고 싶다는 것처럼.


".. 가끔은, 아니, 사실 자주,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냥 죽는 게 아니야. 아예,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내 모든 자취와 흔적이 사라지는 거야. 그 누구도 슬프지 않게, 내 존재를 지우고 싶은 거야."


술에 젖어 축축한 그녀의 손과는 달리, 끝까지 그녀는 울지 않았다. 무던한 음성으로 고해성사를 하듯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종종 그녀를 보았다. 뜻 모를, 그러나 강렬했던 그 기억과 달리 드문드문 떠오르는 그녀는 언제나 맑았다. 산뜻한 웃음으로 우리 세 오누이와 술래잡기를 하고, 동네 아저씨들과도 호탕하게 승부를 겨루곤 했다. 나도, 누이도, 형도, 모두 그런 그녀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칭얼거리며 그녀를 찾았던 우리도 그 또래답게 곧 그녀를 잊고 다른 이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_


편집사 직원은 울듯 웃었다. 작가의 말을 하나둘 내뱉을 때마다 깨져가던 얼굴은 끝끝내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으나 분명 울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 앞에서 그녀가 진정하길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우글우글 모인 사람군단이 꼭 개미떼 같았다.


"그렇군요. 그랬구나. 감사합니다. 이야기해 주셔서."


살짝 미소 지은 그녀가 정중하게 인사해 왔다. 어딘가 상쾌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 집 앞의 공원을 걸었다. 공원과 숲 중간쯤에 위치한 그곳은 커다란 나무로 메워져 있었는데 때문에 푸르른 녹취가 피부가 아리도록 와닿았다.


그녀는, 그 작가에게 어떤 은혜를 입었을까. 그는 왜 그 이른 나이에 죽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어머니는, 그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그 새까만 눈동자에 비친 나는 분명 떠오르는데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얼굴만큼은, 그녀의 음성만은 떠오르지 않았다.


서늘한 바람에 풀이 우는 소리를 듣자니 문득 깨닫는다. 아, 그녀는 어머니의 그 일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녀가 어머니를 만난 건, 아직 어머니가 건강하실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그 일을 시작한 것은, 그녀가 죽고 난 뒤. 그래, 그때부터였다. 꼭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다는 것마냥. 갈구하듯 듣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아, 어머니, 당신은 미처 들어주지 못한 친우의 비명을 듣고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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