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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Dec 13. 2023

무력한 밤

서툴기만 했던 어느 날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반년은 족히 못 본 아이에게서 온 갑작스런 연락에 반가움과 의아함을 담고 전화를 들었다. 연말이 다가와서 한 번 보자는 걸까?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장난스레 애칭을 불렀다. 그런데 이 친구의 목소리가 이상하다. 잘게 떨리는 음성엔 물기가 서려있었다. 우는 일이 거의 없는 아이라 심장이 떨렸다. 놀란 마음으로 물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얼마 전 재택알바를 구했는데 고객과 사장 사이를 연결해 주는 일이었다고 한다. 일과 학업을 동시에 하는 친구이기에 바쁜 까닭으로 재택근무를 구한 것 같았다. 처음 하는 재택 알바에 혹여나 사기일까 사업자등록 따위를 조사해 봤는데 건실히 처리되어 있기에 믿고 일에 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사장이 고액상품 거래에서 고객으로부터 금전을 지급받은 후 사라진 것이다. 갑작스레 사라진 사장에 친구는 당황했다. 고객들은 친구에게 너도 범이 아니냐며 환불을 해주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윽박질렀다. 겁에 질린 그녀는 불안함에 자기 부담으로 환불을 해주었으나 이미 고소된 뒤였다. 경찰서를 찾아간 그녀는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솔직히 말하면 감형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패닉에 빠져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니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마음이 답답하다. 이제 고작 20대 초반인 사회초년생을 상대로 그런 짓을 저지른 사장이라는 인간에 대한 환멸과 혼자 타지에 있어 의지할 곳 없이 마음앓이하고 있을 친구에 대한 걱정, 실컷 법학을 전공해 놓고도 막상 일이 터지니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무력함이 전신을 짓눌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락했겠지. 사실은 알았을 것이다. 저와 동갑인, 아직 법학사를 취득하지도 못한 20대 초반이 사회경험이 많은 어른들에 비해 큰 도움이 되지 못하리란 것을. 그럼에도 무언가 있을까 봐 너무 불안하고 초조해서, 무서워서 연락했으리라. 중간중간 전화가 끊어지고 이어지길 반복했다. 손이 떨려서 자꾸만 종료버튼을 누른 탓에. 그 불안감을 알 것 같아서, 홀로 있는 그 애를 안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런 일이 생기면 늘 망설이게 된다. 상대에게 필요한 게 위로일지, 해결책일지 알 수 없어서. 내가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해봤자 상대의 사고 범위 내일 가능성이 높은데, 어쭙잖은 해결책 보다 위로가 급할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해결책을 말하는 게 맞을지. 그 과정에서 그 애의 마음이 허물어지고 있지는 않을지.

 

또 한켠으로는 당장의 해결이 필요한 상대에게 내 마음 편하자고 계속 안위를 묻는 것이 상대에게는 외레 더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닐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조금 더 능숙한 사람이면 좋을 텐데. 위로에도 문제해결에도 아직은 서툴기만 해서, 그게 참 속상하다.


부디 그 친구의 마음이 크게 다치지 않길 그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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