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녀 이야기
영화 관람과 함께 원작 책과의 비교를 통한 평론회까지 이어지는 한 행사를 통해 <브루클린>을 개봉일보다 일찍 볼 수 있었다. 미리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중에 '이민자의 삶과 사랑을 다룬 아일랜드, 캐나다, 영국 3개국 합작의 멜로 영화'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는데, 관람 후에 느낀 것은 <브루클린>이 이보다 더 많은 것들을 훌륭하게 담은 영화라는 점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점 및 평론회에서 언급된 사실 등에 기반하여 몇 가지 관람 포인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자 이 내용에 공감할 수 있는 이민자들의 역사를 가진 영미권에서는 이 영화가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이민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 닿게 느껴지지 않는 한국에서 <브루클린>이 과연 흥행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평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름 타지 생활의 고충을 겪어보았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 아일리시가 타국에서 겪는 향수병과 고국에 돌아와 느끼는 감정 등이 얼마나 제대로 표현되었는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인공 아일리시의 심리-아무리 적응했다고 해도 남의 옷을 입은 듯 불편한 뉴욕의 브루클린, 분명 편할 줄로만 알았던 고향 아일랜드에서 또다시 느껴지는 이방인 같은 이질감-가 전개되는 양상,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곧 100% 아일랜드도 100% 뉴욕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자신을 찾아 다시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저 로맨스 영화이기만 한건 아니었지만, 멜로라는 본래 장르에 맞게 토니와 아일리시의 너무나 달달하고 수줍은 사랑이 아름답다. 첫사랑의 풋풋함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애절함이 아주 잘 표현되었다. 토니가 아일리시에게 푹 빠진 연기를 정말 잘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래서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토니앓이를 계속하고 있다. 너무나 달달하고 아름다워서 진심으로 나도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으니, 로맨스 영화로서는 일단 역할을 다한 듯하다.
미적 감각이 딱히 없는 나지만, 브루클린을 보면서 영화의 장면 구성이나 색감도 훌륭했다고 느꼈다. 색색깔로 톡톡 튀면서도 1950년대의 촌스러운 느낌을 잃지는 않는 적절한 씬들이 눈을 즐겁게 해서, 절대 이 영화가 저예산 영화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일리시의 고향, 브루클린에서 일하는 백화점, 결혼식 등등 모든 장면이 강렬한 색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지만, 예술작품처럼 적절히 배치된 색깔들 덕에 한 층 아름다운 장면들이 연출된다. 외국물을 먹으면서 점점 예뻐지는 아일리시의 모습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또한 아일랜드 하면 떠오르는 청록빛 색깔이 두드러지는데,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푸른 빛깔이 더욱 영화를 아일랜드스럽고 멋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진행되는 중간중간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것도 이 영화의 대단한 매력이다. 억지스러운 코미디보다는 각각의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케미와 이를 통해 웃음 지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훌륭하게 구성되었다. 또한 주인공과 대립구도에 있는 악역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첫인상이 아무리 새침한 캐릭터라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드는 걸 보면 정말 현실을 잘 구현해낸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줄평 : 색감도, 구성도, 연기도 흠잡을 데 없음. 전혀 낯선 곳에서 외로웠던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